안전벨트를 매고 최선을 바라는 수밖에… ‘맨 인 블랙 3’ (2012년)
내가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는 가해자가 되는 게 더 두렵다. 가끔 인터넷에 올라오는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의 블랙박스 동영상을 보면 피해자만큼 가해자에 대해서도 걱정이 든다. 저런 사고를 저지른 사람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게 될까. 어느 자동차보험회사의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택시도 버스도 무섭지만 나는 내가 제일 무섭다.’ 조수석에 타는 사람들은 나더러 “너처럼 운전하면 절대 사고 안 나”라고 말하지만….
운명을 영원히 바꿀 수 있는 거대한 재앙이, 아무 맥락 없이 어느 순간 불쑥 삶에 끼어들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게 아주 가까이에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나. 나는 그 불확실성이 싫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맨 인 블랙’(2012년)에서 젊은 시절의 케이(조시 브롤린) 요원이 미래에서 온 파트너 제이(윌 스미스)에게 하는 말이 최선인 것 같다. 제이 요원이 1인용 비행기인 제트팩에 오르길 주저하며 “이딴 건 못 탄다. 차로 가자. 작동법을 알기나 하냐”고 따지자 케이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사 다 똑같지 뭐. 안전벨트를 매고 최선을 바라는 수밖에(It's like with anything. Just have to strap yourself in, hope for the best).” 정말 그렇다. 불확실성이라는 괴물 앞에 다른 어떤 해법이 있을 것인가.
이 대사를 들으면 묘하게 서글퍼진다. 도로 위에서뿐 아니라 도로 밖에서도, 어디에서도 우리가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안전벨트를 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사고를 당하고 실패하고 불행해질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게 인생이다. 내세에서는 응보가 꼼꼼하게 적용될지 모르나 현세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 잘못도 아닌데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말이 도대체 뭘까. ‘콘택트’(1997년)에서 아버지를 여읜 어린 엘리(지나 말론)에게 신부님이 그랬다. “왜 세상일들이 그런 식으로 일어나야 하는지 우리가 항상 알 수 있는 건 아니다(We aren't always meant to know the reasons why things happen the way they do).” 신부님은 “어떤 때는 그걸 그냥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Sometimes we just have to accept it as God's will)”고 덧붙인다. 우주의 핵심 특성 중 하나는 ‘불공평성’이다. 아무리 화를 내고 눈물을 쏟고 발을 굴러도 이 물리 법칙은 꿈쩍도 안 한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안전벨트를 매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 불행은 피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파니 핑크’(1994년)와 ‘타인의 취향’(1999년)에서처럼 마지막에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라고 노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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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omiom 동아일보-채널A 연중기획인 ‘시동 꺼! 반칙운전’의 일환으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