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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이조전랑

입력 | 2013-01-05 03:00:00


KBS 드라마 ‘전우치’에서 도사 전우치(차태현)가 신기한 도술로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장면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 드라마에 최근 이조전랑(吏曹銓郞)이 등장했다. 이조전랑이 만든 인사안에 불만을 가진 좌의정이 사람을 시켜 이조전랑을 살해하자 전우치가 복수에 나선다. 그러나 이조전랑은 원래 한 사람이 아니다. 이조의 정랑(정5품) 3명과 좌랑(정6품) 3명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지금으로 치면 사무관이나 주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힘이 셌다. 임금에게 직언을 하는 삼사(三司·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관료와 자신의 후임을 추천할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붕당정치는 바로 이조전랑 자리에서 비롯됐다. 1574년(선조 7년) 이조좌랑 오건이 사직하면서 후임에 김효원을 추천했다. 인순왕후(명종의 비)의 남동생이자, 이조참의(정3품)로 있던 심의겸이 반대했으나 전례에 따라 김효원이 그 자리를 맡았다. 마침내 김효원이 자리를 옮길 즈음 심의겸은 동생인 심충겸을 후임자로 천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김효원은 “이조전랑이 외척의 전유물이냐”며 거절했고, 충돌이 시작됐다. 김효원은 한양의 동쪽 건천동(현재 충무로 부근)에, 심의겸은 서쪽 정릉방(현재 서울시의회 부근)에 살았기 때문에 김효원 세력을 동인(東人), 심의겸 세력을 서인(西人)으로 부르게 됐다. 조선후기 300년 붕당정치의 시작이다. 나중에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더 쪼개졌다.

▷영조가 내놓은 탕평책은 이조전랑의 3사 추천권을 폐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노론의 지지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초기에는 노론을 중용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붕당의 폐해를 깨닫고 개혁에 나선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영수를 불러 화해를 권유하고 이조전랑의 인사권을 폐지해 자신이 직접 행사했다. 이조전랑이라는 중급 관리에게 인사권을 맡긴 것은 고관대작과 외척의 인사 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제도는 사람을 넘지 못하는 법. 이조전랑에게 사람들이 줄을 대고 이조전랑은 인사권을 남용함으로써 조선 패망의 단초를 제공했다.

▷오늘날 이조전랑에 해당하는 자리는 대통령인사비서관이다. 노무현 정부는 진흙 속의 진주를 찾겠다며 인사수석비서관을 뒀지만 ‘코드 인사’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인사 논란을 빚었다. 어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분과위 간사를 시작으로 5년 만에 다시 대대적인 정부인사 시즌을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은 소소한 데까지 직접 챙긴다는 점에서 이조전랑을 없앤 영조에 가까운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떤 사람을 기용하느냐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