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붕당정치는 바로 이조전랑 자리에서 비롯됐다. 1574년(선조 7년) 이조좌랑 오건이 사직하면서 후임에 김효원을 추천했다. 인순왕후(명종의 비)의 남동생이자, 이조참의(정3품)로 있던 심의겸이 반대했으나 전례에 따라 김효원이 그 자리를 맡았다. 마침내 김효원이 자리를 옮길 즈음 심의겸은 동생인 심충겸을 후임자로 천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김효원은 “이조전랑이 외척의 전유물이냐”며 거절했고, 충돌이 시작됐다. 김효원은 한양의 동쪽 건천동(현재 충무로 부근)에, 심의겸은 서쪽 정릉방(현재 서울시의회 부근)에 살았기 때문에 김효원 세력을 동인(東人), 심의겸 세력을 서인(西人)으로 부르게 됐다. 조선후기 300년 붕당정치의 시작이다. 나중에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더 쪼개졌다.
▷영조가 내놓은 탕평책은 이조전랑의 3사 추천권을 폐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노론의 지지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초기에는 노론을 중용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붕당의 폐해를 깨닫고 개혁에 나선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영수를 불러 화해를 권유하고 이조전랑의 인사권을 폐지해 자신이 직접 행사했다. 이조전랑이라는 중급 관리에게 인사권을 맡긴 것은 고관대작과 외척의 인사 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제도는 사람을 넘지 못하는 법. 이조전랑에게 사람들이 줄을 대고 이조전랑은 인사권을 남용함으로써 조선 패망의 단초를 제공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