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대박입니다. 사는 건 힘겨운 전쟁, 세상엔 자비가 없다는 팡틴의 노래에서는 눈물이 나네요. 영화를 보고 나니 영화보다도 ‘레미제라블’을 읽고 며칠 동안 책 생각만 했던 20대 때 그때의 감동이 깨어납니다. 영화에서는 잠깐이지만 원작에서 빅토르 위고는 미리엘 신부와 장 발장의 만남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삶의 모든 일이 표지라면 장 발장이 미리엘 신부를 만난 것은 변화의 예감이지요? 억울하게 당해야 했고 견뎌야만 했던 긴긴 인욕의 세월이 묵은 만큼 아픈 만큼 빛으로, 사랑으로 변하는 계기였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내 꿈이 내가 가꾼 화단이 있는 집에서 대문 걸어놓지 않고 사는 것이었던 것도 미리엘 신부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그랬으니까요. 나는 귀족이 와도, 걸인이 와도, 언제나 한결같이 검소한 식탁을 흔연하게 나누는 그가 참 좋았습니다. 그는 일용할 양식의 힘을 알고 있는 남자였습니다. 그와 함께라면 거친 빵과 따뜻한 수프도 신이 차려주신 훈훈한 밥상이 됩니다.
그 신성한 식탁에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암담한 죄수 장 발장이 앉게 된 것입니다. 모두들 위험하다고 경계하라고 하는데 신부만 괜찮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집은 고통받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재워주기까지 합니다. 위험하다고 한 사람의 예감대로 장 발장은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잡혀 옵니다.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는데, 신부만 준 거라고, 선물이라고 하지요? 은촛대도 줬는데 왜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되묻습니다. 그의 능청에 경찰도 의혹을 풀어버립니다.
어떤 이는 사랑도 숨 막히는 집착으로 바꾸지요?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도 의혹으로 바꿉니다. 그런데 미리엘은 의혹을 평상심으로 바꾸고, 도둑질도 자비로, 사랑으로 바꿉니다. 위악적일 수밖에 없었던 장 발장이 위악의 가면을 벗고 말갛게, 괜찮은 자기 얼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괜찮은 사람 미리엘 때문입니다. 미리엘은 긴긴 부조리의 세월을 마르지 않은 사랑의 에너지로 바꿔주는 마법사였습니다.
19년의 부조리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된 큰사람에겐 거칠 게 없습니다. 미리엘을 만나 전환점을 맞으며 장 발장은 우뚝 성장하고 고독 속에서도 빛이 나, 조용한 사랑, 깊은 사랑, 큰 사랑을 할 줄 아는 진정한 사내가 된 것입니다. 그렇듯 사랑은 사랑으로 흐릅니다.
따스한 사랑의 온기에 삶이 바뀐 적이 있으신지요? 억울해서 소화가 되지 않고 명치끝에 걸려 있기만 했던 버림받은 시간들이 그 온기로 인해 진실하고 다부진 에너지로 전환될 때 비로소 우린 ‘존재 이유’를 믿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