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한국 재즈계의 스승’ 정성조 씨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뉴욕 퀸스칼리지 음대 연습실에서 만난 재즈 연주자 정성조 씨(위 사진). 그는 “젊어서 못다 한 배움을 이어 가려고 유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씨(아래 사진 왼쪽)는 12월 6일 이 학교 졸업연주회에서 ‘강강술래’를 재즈로 재해석한 ‘서울 익스프레스’를 선보였다. 뉴욕=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그가 교수 아닌 학생이라는 걸 알아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원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정 씨는 그보다 40년은 어려 보이는 희거나 검은 피부의 학생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연습실로 들어갔다. 테너 색소폰을 꺼내 유려한 즉흥연주로 입을 푼 정 씨는 원장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2011년까지 서울예대 실용음악학과장을 맡아 ‘스승 중의 스승’ 역할을 해 온 그는 그해 8월 정년퇴임과 함께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시 학생으로 ‘백의종군’한 것. 가장 먼저 그를 말린 이는 서울예대 제자들이었다. “선생님께서 뭘 더 배울 게 있다고 만리 길을 가십니까.”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입학한 퀸스칼리지에서 사사한 음악대학원장은 정 씨보다 한참 ‘동생’인 50대 음악인 마이클 필립 모스먼. 디지 길레스피, 호레이스 실버 같은 재즈 거장과 협업해 온 베테랑 뮤지션인 모스먼에게 정 씨는 빅밴드 지휘와 편곡부터, 중학생 때부터 잡아온 테너 색소폰 연주까지 다시 배웠다. “여기서 유학했던 아들(재즈 트롬보니스트 정중화)을 보러 왔다 만난 모스먼이 스승으로서 너무 탐났습니다.”(정성조) 모스먼 원장은 “더 가르칠 게 없는 경지에 오른 연주자가 배우겠다고 찾아와 내가 더 황송했다. 그의 열정에 한 번, 경력과 실력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6일 졸업연주회에서 ‘강강술래’의 재즈 버전을 만들어 무대에 섰다는 정 씨는 퀸스에서의 세 학기 동안 학생뿐 아니라 교사로서의 자세도 다시 배웠다고. “하루는 모스먼 교수가 아침 일찍 나와 도넛을 테이블에 깔고 있었죠. ‘그런 건 학생들 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일찍 나오는 젊은 연주인들을 기분 좋게 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답하더군요!”
67세의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2일 귀국한 정 씨는 ‘숙제’가 남았다고 했다. 석사학위까지 받았으면 끝난 것 아닌가. “라이브 연주야말로 음악인의 과제잖아요.” 그는 5일 서울 대학로 ‘천년동안도’, 11일 ‘청담동 원스 인 어 블루문’ 무대를 시작으로 중학교 때부터 들었던 색소폰을 잡고 클럽 무대에 다시 오른다. 뉴욕에서 녹음해온 빅밴드 연주도 다듬어 상반기 중 음반으로 낼 계획이다.
뉴욕에서 1년 반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배워 왔다는 정 씨에게 물었다. 배운 것, 이제 어디다 써먹을 거냐고. “…글쎄요. 아직 생각 못해 봤는데, 허허. 말할 수 없이 큰 것은 배우는 즐거움, 그 자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