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음 세상엔 꼭 내 딸로 태어나!◇엄마와 딸/신달자 지음/220쪽·1만2000원·민음사
시인 신달자의 에세이 ‘엄마와 딸’은 모녀가 함께 돌려보기 좋은 책이다. 사랑하지만 표현에는 서툰 엄마와 딸들은 시인의 솔직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민음사 제공
노모는 돈을 다시 딸의 주머니에 넣는다. “혼자 빨리 저 시장에 가서 짬뽕이라도 한 그릇 사먹어라.”
모녀는 1만 원짜리 한 장을 갖고 대문 앞에서 옥신각신 싸운다. 시인은 홱 돈을 길에 던져 버리고 대문을 쾅 닫았다. 조금 후, 대문을 밀고 나가 보니 길에는 돈도, 노모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 만 원짜리 한 장을 거리에서 허리를 굽혀 주웠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뼈가 저리다.”
신달자는 엄마와 딸의 모진 인연이 뼈저리게 삶에 스며든 사람이다. 내리 딸 여섯을 낳고 막내아들을 얻은 집에서 시인은 여섯 번째 딸이었고, 이제는 마흔 내외의 딸 셋을 둔 엄마다. 신달자는 부부 관계에서는 물질적·감정적 계산이 있을 수 있지만 모녀 관계는 그런 계산이 없다고, 이별 또한 부부 사이엔 존재하지만 모녀에게 영원한 이별은 없다고 말한다. “죽음도 그 이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딸,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라는 엄마. 이들은 상대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다툰다고 시인은 말한다. ‘‘감정의 암’을 태우기 위해서 깊은 대화를 하라’, ‘편지로 마음을 전하라’, ‘엄마의 한을 딸에게 풀지 마라’ 등 여러 조언을 전하기도 한다. 연륜이 묻어나는 글들은 곱씹으며 되새길 만큼 공감이 간다.
‘신달자 산문’이 갖는 힘은 무엇보다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아들을 기대했던 집안에서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난 핏덩이였던 자신을 엄마가 아무도 모르게 두어 번 뒤집어엎어 버렸다거나, 엄마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 기도를 했던 얘기를 덤덤히 전한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들춰내 먼저 손을 내밀기에 독자는 위로를 얻고 공감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시인은 엄마와 딸 중에서 먼저 엄마가 물러서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도 한때는 ‘못된’ 딸이었지만, 이제 일흔의 나이가 되니 엄마가 한없이 그립고, 딸들을 더 포용하게 됐으리라. 서로 사랑만 하기에도 삶은 짧다. 엄마에게 살가운 사랑을 전하지 못했던 시인은 허공에 외친다. “엄마! 다음 세상엔 꼭 내 딸로 태어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