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신소죠, ○○○씨 스펙-과거 확인되나요”… 의뢰자도 사생활 침해 처벌
A 씨는 흥신소에서 받은 프로파일을 자랑처럼 들고 와 “괜찮은 사람이냐”고 상담했다. 이 씨는 “이렇게까지 사생활을 조사하다가 큰일 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A 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무시했다. 마지막에 소개받은 두 남성은 모두 수백억 원대 자산가의 아들이라 ‘밀착 조사’를 의뢰했다. 하루 종일 미행하며 행적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A 씨가 파악한 정보는 상담사도 미처 몰랐을 정도로 상세했다. 재산 명세는 기본. 혹시나 혼인한 전력을 숨기고 딸을 만날까 걱정돼 과거 이성관계도 꼼꼼히 조사했다. 마지막에 소개받은 두 남성은 모두 자산가의 자녀들이라 이성관계나 생활습관, 술버릇 등까지 캐내라고 흥신소에 의뢰했다. 수백만 원을 들여 사생활을 모두 캐내고서야 A 씨는 딸을 300억 원대 자산가의 아들에게 4월 시집보내기로 했다. 사랑과 믿음이 아니라 흥신소의 신상 캐기로 결혼하는 셈이다.
동아일보 취재진은 4일 흥신소 10곳에 직접 문의 전화를 해봤다. “결혼을 앞둔 애인을 못 믿어 전화했다”고 하자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는 투로 응대했다. 대부분의 흥신소는 “요즘 이런 일 맡기는 젊은이들 적지 않다”며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남성 기자가 여자친구의 민감한 과거를 캐내 달라고 하는 요구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거기 심부름센터 맞나요?”(기자)
“그런 일 안 한 지 오래됐어요. 전화 끊습니다.”(흥신소 직원)
“그렇긴 한데 누구세요?”(기자)
“아까 전화 받은 사람인데요. 단속이 심해서 저희도 미리 좀 알아봅니다. 필요하신 게 뭐죠?”(흥신소 직원)
“결혼하려는 여자친구가 유학 경험이 있는데 의심이 돼서…. 낙태한 적 있는지 알 수 있나요?”(기자)
▼ “재산-직업부터 낙태-성병 기록까지 뒷조사 가능” ▼
일부 흥신소에서는 더 상세한 내용까지 조사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처방받은 약을 추적해 낙태 사실뿐만 아니라 성병을 포함한 기타 병력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낙태 여부를 조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일. 가격은 70만 원이었다. 또 다른 업체 직원은 “1주일 걸린다”며 “160만 원만 내라”고 흥정했다.
요즘 예비부부들 사이에선 배우자 신상 캐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가 남녀 각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1%가 “배우자 신상 캐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기회가 된다면 흥신소를 이용해 보겠다는 대답도 28%였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수한 교수는 “결혼이 낭만적인 관계에서 계약적인 관계로 변해 가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진단했다. 상대의 스펙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풍조가 확산될수록 상대에 대한 정보를 검증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는 분석이다.
흥신소에선 “아무 문제없다”며 안심시키지만 개인정보까지 뒷조사하는 행위는 사생활 침해로 처벌될 수 있다. 법무법인 신세계로 조인섭 변호사는 “흥신소에 일을 맡기다가 적발되면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본인이 직접 신상을 캐지 않고 단순히 의뢰만 해도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