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의 명화/이소영 지음/284쪽·1만6800원·모요사
존 컨스터블의 1826년 작 ‘옥수수 밭’.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는 구름 묘사에는 기후 변화에 민감한 영국인의 특성이 담겨 있다. 영국이 기상학의 산실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과학과 미술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날씨가 현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이 책은 19세기 초 기후가 과학과 미술에 드리운 파장에 주목했다. 영국에서 기상학이 태동하고, 자연을 면밀히 관찰해 화폭에 담는 낭만주의 풍경화가 성행한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 가운데 당대에 활동한 ‘구름에 빠진 과학자’ 루크 하워드와 ‘구름 그림의 대가’ 존 컨스터블의 생애와 성과에 초점을 맞춰 직물 짜듯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실험실의 명화’는 이처럼 ‘멀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끈끈한 친척’인 과학과 미술의 접경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버무려 놓는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정보기술(IT) 전문잡지기자로 활동했던 저자에게 이런 주제는 맞춤옷처럼 편안해 보인다. 예를 들어,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 담긴 여신의 바다거품 탄생설화에서 생물의 진화에 대한 고대인의 혜안을 감지해낸다. 르네 마그리트의 ‘집합적 발명’을 보며 2004년 발굴된 ‘발이 달린 물고기’ 틱타알릭 화석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에세이처럼 사적 취향이 물씬하다가도 묵직한 미술과 과학 영역도 ‘스리슬쩍’ 넘나드는 공력이 만만치 않다.
그만큼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했음이 분명한 정보량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여러 명의 대가가 그린 해부학 강의에 대한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인체 회화론의 역사를 설명하거나 반대로 의학적 발전이 미술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 짚어보는 건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뇌 해부도에 빗대어 설명한 미국 의학자의 주장은 진실 여부를 떠나 한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다.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가 1803년에 발표한 구름 삽화(왼쪽 사진)와 존 컨스터블의 회화 ‘오른편에 나무가 있는 구름 연구’(1821년). 모요사 제공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