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간 떨어지는 굉음 폭력… 오늘은 몇번 당했나요
○ 도로의 융단폭격기 경적
경적이 보행자에게 미치는 스트레스도 크다. 본보 취재팀은 4일 20∼50대 도시 근로자 10명에게 하루동안 몇 번이나 경적 소리를 듣는지 기록해 달라고 의뢰했다. 그 결과 이들이 들은 경적 소리는 0∼21회로 1인당 평균 9.7회였다. 버스로 통근하는 회사원 최모 씨(28·여)는 이날 총 11번의 경적소리를 들었다. 오전 11시경엔 서울 중구 무교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을지로에서 우회전해 오는 관광버스가 울리는 경적 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고 한다. 그는 “승용차 경적에도 놀라지만 버스나 트럭은 몇 배나 커 공포스럽다”라고 말했다. 그가 들은 버스 경적은 천둥이나 전기톱 소리에 맞먹는 112dB(데시벨) 수준이다.
○ 운전자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0.295였던 조 기자의 스트레스 지수는 5초에 한 번씩 2분간 경적 소리를 듣자 0.495로 치솟았다. 평온한 마음으로 출근하자마자 데스크에게서 30분 이상 쉴 새 없이 욕설에 가까운 말투로 잔소리를 들었을 때에 비견할 만한 스트레스였다. 한 연구 자료는 이 정도 스트레스를 ‘칠판을 손톱으로 긁었을 때 받을 만한 세기’라고 표현했다. 청력 손상을 방지하려고 92dB로 낮춰 실험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강 기자의 스트레스 지수는 0.427에서 0.458로 약간 상승했다. 스트레스 지수는 초조함을 나타내는 하이베타파를 알파파(안정 상태 때 발생하는 뇌파)로 나눈 수치다. 높을수록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뜻이다.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는 어떨까.
본보와 남궁문 원광대 토목공학과 교수팀이 5일 서울 종로구 일대 7.9km를 운전할 때 경적을 9차례 울린 정모 씨(33)의 뇌파를 측정했다. 정 씨의 스트레스 지수는 경적을 울릴 때마다 치솟았다. 9번 경적을 누르는 순간의 스트레스 지수는 평상시보다 평균 4배로 높아졌다. 노란불에 교차로를 건너거나 차로를 2, 3개씩 한꺼번에 가로지르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을 때보다도 경적을 울렸을 때의 스트레스 지수가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소음뿐 아니라 경적을 유발하는 나쁜 운전 습관 때문에 경적 울렸을 때 스트레스가 급증한다고 지적한다. 실험 대상 운전자가 경적을 울린 상황은 주로 앞차에 바싹 붙어 운행하다가 그 좁은 틈으로 끼어들려는 옆 차에 경고를 보내거나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앞차에 짜증을 풀기 위한 경우였다.
○ 이제는 조용한 도로 만들어야
도로에서 불필요한 경적 소음을 걷어내려면 운전자들의 의식 개선과 함께 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경적을 울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도로교통법에 따라 처벌받지만 단속이 어렵다. 단속돼도 승용차의 범칙금은 최대 4만 원이다.
소음 제한 기준인 110dB(대형차 112dB)을 어기고 불법 개조 경적을 단 차량도 스트레스의 주범이지만 이 역시 단속이 어렵다. 경적은 자동차 정기검사의 필수 점검 항목이 아니다. 배기 소음이 크게 들리는 경우에만 한해서 경적 이상 유무를 검사한다. 이 탓에 지난해 검사차량 277만 대 중 불법 개조 경적을 장착했다가 단속된 차량은 57대뿐이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공동기획: 경찰청·손해보험협회·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안전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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