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전 국회의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이번 인수위는 실무형 인사로 짜였다. 정치인 중심, 논공행상 위주로 꾸려졌던 역대 인수위와 견주면 바람직한 출발이다. ‘인수위=권력 기관=출세 사다리’라는 등식은 깨뜨린 모양새다. 선거 기간은 표를 얻기 위한 열정의 시기다. 그러나 인수위는 쿨다운(Cool-down), 복기(復棋)를 통해 내일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냉철한 이성이 요구된다. 그래야 취임 이후 신뢰와 감동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인수위=출세사다리’ 등식 깨뜨려
5년 전 인수위는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얼리 버드’ ‘노 홀리데이’란 말이 유행어였다. 부처 업무보고도 속전속결로 했다. 장차관 대신 실국장급들이 보고토록 해 일주일 만에 끝냈고, 7대 기준을 미리 제시해 시간 낭비 없이 맞춤형 보고를 하도록 했다. 이번에도 권유하고 싶은 방식이다.
17대 인수위는 30여 일 동안 수백 번의 회의와 검토 끝에 최종 결과물을 도출했다. 이 중 5대 지표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지표로 채택됐다. 그러나 193개 국정 과제는 너무 구체적이고 세부적이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인수위는 한시적인 기구다. 원칙과 방향, 기조만 정하고 나머지는 융통성 있게 적용하면 된다.
18대 인수위는 공약 점검과 국정 기조 및 로드맵 짜기에 주력해 주기를 당부한다. 공약의 취사선택과 우선순위 결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정·보류가 불가피한 공약은 인수위 단계에서 국민에게 솔직히 양해를 구하고 털어버려야 한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후보의 공약 중에서도 받아들일 것은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 대통합 원칙과도 맞는다.
향후 5년간 국정 기조 및 방향 설정은 반드시 미래 전망에 대한 토의와 연구 결과를 전제로 수립해야 한다. 민간 연구소의 견해까지 수렴한 치밀하고 입체적인 6개월 정도의 로드맵을 마련해야 국정 초기 혼선과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로드맵 부실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촉발됐던 촛불시위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몇 가지 제언을 해보고 싶다. 첫째, 국민에게 다가가고 현장을 찾아가는 청와대를 만들어라. 현재 청와대 본관 건물을 백악관처럼 비서동과 합치는 개조 공사를 권한다. 공간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 때처럼 당선인과 인수위가 분리돼 있으면 소통에 지장을 주고, 자칫 인의 장막에 가려져 사적 채널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
국민 찾아가는 청와대 만들어야
셋째, 모든 곳으로 소통하라. 인수위 구성원 간 팀워크와 소통은 물론이고 대정부, 대언론, 대여당, 대야당 등 다채로운 소통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정치는 과정(프로세스)의 예술이고, 프로세스의 핵심은 소통이다. 마지막으로 설익은 정책, 검토 과정에 있는 이슈가 언론에 나가면 혼란과 오해를 낳기 쉽다. 1일 1회 공식 브리핑을 정례화해 그런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 인수위의 50일이 향후 5년의 성패를 좌우한다. 대통령이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해진다. 당선인의 철학에 맞는 청사진과 로드맵, 내비게이션의 탄생을 기대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