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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미래전략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입력 | 2013-01-08 03:00:00

“글로벌 리더십 혼란… 한국, 우호관계 넓혀 ‘중심축 국가’ 돼야”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13일 미국 뉴욕 유라시아그룹 사무실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한국과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 “‘세계 선거의 해’였던 지난해 가장 큰 파장을 남긴 정권 교체는 일본이다. 일본의 보수정권 집권으로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관계마저 악화되면서 아시아가 중동보다 더 큰 국제사회의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44)은 일본의 극우화가 미래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한 경계심부터 나타냈다. 미국의 세력 약화로 글로벌 리더십이 혼란을 맞고 있는 현 시기에 한국의 새 정부는 과연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그는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기대지 않고 파트너의 저변을 넓히는 ‘중심축 국가(Pivot state)’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브레머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13일 미국 뉴욕 유라시아그룹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여러 차례 추가 e메일을 교환하고 전화인터뷰를 했다. 》

―국제정치학 관점에서 2030년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과도기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를 통해 국제정치와 시장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시대와는 뭔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방향이 2030년에 어디로 귀착할지 지금 얘기하기는 이르다. 현재는 글로벌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고 주요국이 없는 ‘주요국 제로(G0)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도기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보나.

“최소한 5년이며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국제사회는 불행해진다. 수천 명이 숨지고 수만 명이 인근 국가로 피란 간 시리아 사태가 2년을 넘기고 있지만 어느 국가도 이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유로존 위기 해결 과정에서도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찾기 어렵다. 이런 사회가 지속되는 게 두렵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주요 2개국(G2)시대를 얘기하고 있는데….

“중국은 향후 상당 기간 G2가 될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어 보인다. 중국은 중동 평화협상이나 유로존 위기, 시리아 사태 등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은 많은 분야에서 서로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정치 경제시스템을 갖고 있고 정책 우선순위가 다르다. 환경 문제만 해도 그렇다. 미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지만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은 배출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국이 10∼20년 뒤 G2 역할을 맡으려 할지 모르지만 당장은 아니다. 내부 문제 해결과 경제발전이 더 시급하다.”

―‘G0’ 시대가 지나면 어떤 세상이 올까.

“두 가지 중요한 축을 봐야 한다. 한 축은 미중관계이고 다른 축은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들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갖느냐는 것에 관한 것이다. 첫째, 미중관계가 좋고 다른 나라의 관심과 비중도 커진다면 진정한 G20 또는 ‘국가들의 협조체제(Concert of Nations)’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다자 협상이 원활하고 국제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는 가장 이상적인 글로벌 사회다. 둘째, 미중관계가 호전되고 중국도 국제사회에 눈을 돌리지만 다른 나라가 별 관심이 없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G2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두 나라가 관심을 갖는 영역에서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셋째, 미중관계가 악화되고 다른 나라도 각자 제 살길만 챙긴다면 제2의 냉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매우 위험한 사회이며 경제·안보 장벽이 생길 것이다. 넷째, 미중관계가 나쁜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이 그나마 역할을 하면 현재 같은 G0 체제가 지속될 것이다. 그러면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별 통합이 강화되는 서브글로벌(Sub Global)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다. 환태평양경제공동체(TPP) 걸프경제협력체(GCC) 등 지역통합화가 강화될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까지는 과거와 다른 차원의 G0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국제사회로 언급했던 G20체제에 어떤 정책 제안을 해줄 수 있나.

“미국은 아시아와 강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중국은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도시인들이 경제·정치적 개혁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중국에 이를 요구하기엔 너무 이르다. 미국은 지금처럼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고 국제사회 이슈, 특히 아시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이 등을 돌리면 국제사회는 어려워진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

“유럽연합(EU)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좀더 강력한 초국가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은행동맹이나 새로운 유럽통화연합이 등장해 보다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그렇게 될 것으로 낙관한다. 일본은 군사보다는 경제 문제에 집중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일본이 군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다.”

―지난해 많은 국가의 선거로 예상되는 올해의 변화는….

“전반적으로 별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1년 전만 해도 국제사회의 가장 큰 권력이동은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의미를 던진 정권 교체는 일본에서 일어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군사 및 안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중국의 강경파를 견제할 것이다. 일본은 물밑에서 진정한 정치변화를 거쳐 돈독한 미일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두 나라가 손잡을 것이다.”

―일본의 정권 교체가 그렇게 위협적인가.

“세계에서 가장 긴장이 높은 지역이 중동과 아시아다. 중동은 이미 폭발했지만 아시아의 긴장은 점점 고조될 것이다. 이는 중국의 부상으로 시작됐다. 중국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호주 등과 모두 갈등을 겪어왔다. 아베 총리가 무장에 박차를 가하면 중국이 강경하게 대응해 긴장이 더 고조될 것이다. 머지않아 중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면 2, 3위가 될 미국과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더 가까워질 것이다. 미중관계가 한층 악화되는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확언하건대 중동 불안보다 더 큰 국제사회의 문제가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북한이 또 장거리로켓을 쏘았는데….

“북한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미사일을 쏘는 것이 한국 정부로서는 불편하겠지만 북한은 항상 호전적이었다.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이 줄을 이었다. 국제사회는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김정은 체제는 이전보다 덜 호전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출간한 ‘다음은 무엇일까(What's next)’라는 책은 어떤 내용을 다뤘나.

“가장 중요한 새로운 움직임은 ‘경제적 외교술(Economic statecraft)’의 부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 관점에서 국방비 등 상당한 국가자원을 투입했지만 (아시아에서의) 경제적 역할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아시아 영향력 확대 도구가 군사안보 측면보다 경제정책으로 변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즉, 경제를 외교정책의 중심에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분석이 늘고 있는데….

“계층에 따라 다르다. 상위 10%에겐 계속 좋을 것이다. 하지만 중산층과 근로자층에겐 미국의 쇠퇴가 잘못된 얘기가 아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사회복지서비스 건강보험 사회기반시설과 안전 등이 점점 열악해지고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 그것이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다.”

―세계에 다가올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중국의 부상이 가장 실질적이고 명백한 도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영국에서 패권을 넘겨받았다. 두 나라가 같은 자본주의 국가이고 문화·역사적 배경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어 권력 이동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국가주도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 서로 믿지 못하는 관계다. 한국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다.”

―2030년에 한국이 톱5로 올라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많은데….

“한국이 그런 잠재력을 갖고 있고 부상하는 아시아의 장점과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두 가지 불확실성 때문에 단정하기 힘들다. 우선 북한이 지속가능한 체제가 아니다. (북한이 붕괴되면) 남한에 미칠 영향은 어마어마하고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닐 것이다. 2030년 한국의 미래에 의문부호를 던지는 것은 바로 북한 때문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한국이 중국과 너무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주도 계획경제가 시장원리로 작동하는 경제시스템으로 옮겨가는 과도기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가장 불확실한 중국에 미래를 걸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미중일 등을 떠나 더 많은 파트너를 만드는 다변화가 새 정부의 과제다. 관계가 느슨했던 국가에 의욕적으로 진출하고 우호관계를 맺어야 한다. 세계가 점점 지역 통합화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어떤 나라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른바 ‘피버팅(Pivotting·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잘 하는 나라를 피벗 국가라고 부른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캐나다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대표적이다. 국제사회가 정치 경제 전략적인 측면에서 각자 다른 가치, 기준,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일 것이니 특정 국가나 그룹에 과도하게 기대지 말라는 의미다.”
:: 이언 브레머 ::

국제사회에서 주목받는 젊은 정치학자로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정치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을 이끌고 있다. 툴레인대를 나와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딴 브레머 회장은 1994년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최연소 국가연구원이 됐다. 2007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젊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됐다. 현재 컬럼비아대 이스트웨스트인스티튜트 월드폴리스인스티튜트에서 강의하고 있다. 1998년 설립한 유라시아그룹은 150여 개 기업 금융회사 정부 등에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컨설팅하고 있다. 저서로는 국내에도 출간돼 인기를 얻은 ‘J커브’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국가는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다음은 무엇일까(What's next)’ 등 다수가 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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