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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기자의 영화와 영원히]음악의 기억은 달콤한 영상보다 강하다

입력 | 2013-01-08 03:00:00


배우 출신인 34세 여자 감독 세라 폴리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는 음악을 배치한 솜씨가 노련하다. 티캐스트 제공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본 관객이 400만 명을 넘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사실 오케스트라 반주로 ‘돈의 맛’을 낸 이 영화의 음악은 내 귀에는 맞지 않았다. 에포닌 역의 뮤지컬 배우 서맨사 바크스를 제외하고 휴 잭맨, 러셀 크로 등 주연 배우들의 노래 실력도 기대 이하였다.

아기가 자궁에서 세상의 소리에 반응하듯 귀의 기억은 눈의 그것보다 강하다. 지난해 내 귀에 남은 영화들이 있다. 영화와 음악의 감성이 일치하면 시너지 효과는 배가된다. 이런 점에서 ‘건축학 개론’은 ‘순(順) 결합’을 한 경우다. 영화에 쓰인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현재의 애인 때문에, 마누라 때문에 잠시 지갑에 감춘 첫사랑을 꺼내보게 한다.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나를 흔들었다.

반면에 영화의 감성과 다른 음악을 쓴 역(逆) 결합이 인상적인 작품은 ‘우리도 사랑일까’. 영화 속 영국 밴드 버글스의 노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는 사랑을 진중한 시선으로 응시한 영화와 달리 방정맞은 리듬 그 자체. 하지만 노래가 빛나는 이유는 극 중 등장 타이밍에 있다. 노래와 함께 주인공 남녀를 태우고 돌아가던 롤러코스터는 음악이 멈춤과 동시에 정지한다. 주인공들도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난다.

인류의 거창한 창조 신화에 대한 믿음을 확 깨는 ‘프로메테우스’의 도입부 음악도 압권이다. 외계에서 온 거인이 폭포에 자신의 유전자를 흘려 인간의 창조를 암시하는 장면이다. 오케스트라의 장중한 반주가 ‘인간 괴물’의 등장을 반긴다.

‘터치’는 5억 원의 저예산 영화지만 정용진 음악감독이 일 년 이상 공을 들인 피아노 연주곡은 명품이다. 조미료와 ‘버터 냄새’ 나는 오케스트라 반주 대신에 피아노 하나로 관객의 감성을 터치한다. 함축적이고 철학적인 영화 분위기를 담백하게 살려준다.

곽경택 감독의 ‘최대 흥행 실패작’인 ‘미운 오리 새끼’의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나오는 아이유의 ‘미운 오리’도 영화의 여운을 길게 끌고 간다. 좁은 집 안에서 두 노인이 벌이는 사랑의 소꿉놀이를 응시하게 만드는 ‘아무르’의 ‘무음의 음악’도 탁월한 선곡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