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한국프로야구를 회상하고 있는 이규석 전 심판. 프로야구 최초로 2000경기를 판정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원년 심판 이규석씨의 20세기 한국 프로야구 회고 ②
최동원시리즈, 1차전 이어 7차전 주심 당황
‘삼성-롯데가 원해’…이유 알고 수긍했었다
1991년 한일 슈퍼게임은 투수들이 날 선택…
그해 KS 송진우 퍼펙트 기회…정확한 판정
센스가이 이종범·배우 뺨치는 정영기 생생
프로야구는 1982년 개막전 이종도(MBC)∼올스타전 김용희(롯데)∼한국시리즈 김유동(OB)의 만루홈런 세 방으로 성공의 문을 열었다. 이규석도 프로심판으로 자리 잡았다. 판정도 정확했지만, 선수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한양대 코치 시절 함께했던 제자들이 프로 초창기 각 팀의 주전으로 활약한 덕분이었다. 진실로 사람을 대했던 이규석의 인격을 알기에 그들은 덕아웃에서 팀 동료들에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로 기억될 1984년 롯데-삼성의 7차전. 롯데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최동원(작고)-한문연 배터리가 환호하며 서로를 껴안으려고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1984년 KS 최종 7차전, 양 팀이 그를 원하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한국시리즈의 심판을 봤다. 1984년 롯데-삼성의 한국시리즈. 롯데 최동원(작고)이 작성한 한국시리즈 첫 완봉승을 판정했다. 4-0으로 이긴 1차전에서 최동원은 삼진 7개를 잡았다.
1991년 해태-빙그레의 한국시리즈 3차전. 8회 투아웃까지 퍼펙트피칭을 이어가던 빙그레 송진우. 그가 대타 정회열에게 던진 운명의 5구를 볼로 판정한 사람은 이규석 주심이었다. 스포츠동아 DB
○1991년 한·일슈퍼게임, 우리 투수들이 원했다!
1990년 6월 8일 이규석은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오광소 심판에 이어 2호였다. 묵묵히 걸어온 심판인생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91년 그보다 더 영광스런 훈장을 달았다. 제1회 한·일슈퍼게임 때였다. 양국 심판이 함께 경기에 배정됐던 시리즈에서 2차전 주심이 됐다. “도쿄돔에서 열린 1차전은 일본 심판 오카다가 주심이었다. 요코하마에서 열린 2차전은 우리가 주심을 볼 차례였다. 김응룡 당시 대표팀 감독이 우리 투수들에게 주심으로 누가 좋으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한국은 2차전에서도 완패를 당했다. 수준차가 확실히 드러났다. 일본 선수들의 기량에 압도된 우리 선수들은 평소 실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이규석의 애국판정도 없었다.
31991년 벌어진 제1회 한·일슈퍼게임. 1차전에서 해태 김성한(오른쪽)이 이라부(작고)를 상대로 홈런을 뽑아낸 뒤 빙그레 장종훈의 환영을 받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1991년 송진우가 던진 운명의 제5구 판정
3차전 뒤 취재진은 그 5번째 공의 판정에 대해 물었다. 이규석은 “볼이 확실하다”고 했다. 세월이 20년이나 흘렀지만, 송진우는 지금도 그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믿고 있다. 기자에게 “이규석 심판에게 꼭 한 번 다시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나도 그 판정 이후 많은 생각을 했다. 볼이라는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몇 년 전에 유승안을 만나는 자리에서 물었다. 당시 포수를 봤으니까 누구보다 정확할 테고 준비 없이 갑자기 물어야 마음속의 대답이 나올 것 같았다. 유승안의 첫 마디가 ‘빠졌어요’였다.”
▲유승안의 회고=몸쪽 직구였다. 선수 입장에선 무조건 들어온 상황이다. 그 때 당시 그 정도 볼이면 스트라이크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물론 심판 판정 나름이지만. 규석 형이 워낙 정확하게 판정을 하니까 더 할 말은 없다.
○심판을 도와주는 어여쁜 선수·심판을 속인 선수
심판과 포수, 타자가 모인 홈에선 팬이 모르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요즘처럼 TV 중계 화면이 전 경기를 샅샅이 지켜보는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초창기에는 어수룩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투수와 포수, 타자 모두 심판을 속이려고 했다.
심판 이규석이 기억하는 가장 귀여운 선수는 이종범(해태·KIA)이었다. 야구 센스가 뛰어났다. 지금까지 그가 겪어본 선수 가운데 최고의 센스를 지녔다. 연도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더운 여름 초반에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경기였다. 이종범이 타석에 들어섰다. 지나가는 말로 “종범아, 이런 경기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다. 이종범은 실실 웃더니 “일찍 끝내야죠”라고 답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초구를 냅다 쳐서 병살로 아웃됐다. 덕아웃으로 돌아가면서 “아저씨, 나 잘했죠”라고 했다. 이종범은 그런 선수였다. 심판 이규석과 장난도 많이 쳤다. 종범이는 나를 아저씨라 불렀다.
반대로 얄미운 선수까지는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 정영기(MBC·롯데·태평양)다. 어느 경기인가 타석에서 들어섰다가 몸쪽 공이 오자 뒤로 쓰러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러지고 아프다며 뒹굴어 공에 맞은 줄 알았다. 그래도 파울이라고 봤다. 롯데 감독이 뛰어나와 사구라고 우겼다. 아무래도 이상해 포수에게 물었다. 상대팀 포수도 “안 맞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의심은 갔으나 물증이 없었다. 어떻게 경기가 진행되고 다음 타석에 정영기가 들어왔다. 대뜸 “너 야구 그만두고 사기나 치고 살아라. 그렇게 거짓말을 잘 하냐”고 넘겨짚어봤다. 그러자 정영기가 대뜸 “선생님, 죄송합니다”라며 자백했다. 그런 면에선 정영기가 참 순진했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 @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