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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적산가옥 행복한 결합… 도시의 나이테 살렸어요”

입력 | 2013-01-09 03:00:00

■ 한옥병원+일식별관 설계로 대구시 건축상 금상 탄 조정구 씨




‘임재양 외과’는 한옥 병원(왼쪽)과 내부를 일본식으로 꾸민 별관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다. 대구 중구 삼덕동의 맥락을 고려해 한옥이 있던 자리엔 한옥을, 적산가옥 자리엔 일식 별관을 지었다. 별관 건물은 원래 정남향으로 마당과 약간 틀어져 있었는데 이마저도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박영채 사진작가 제공

《 대구 중구 삼덕동3가 골목에 한옥을 짓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절을 짓는다더라.” “요정이 생긴다던데.” 하지만 완공된 한옥엔 뜻밖의 문패가 달렸다. ‘임재양 외과.’ 지난해 6월 문을 연 이 유방암 검진클리닉은 거듭 놀라움을 주는 건축물이다. 대로변 빌딩에 자리 잡는 일반 병원들과 달리 골목 안쪽에 숨어 있는데 문패마저 작다. 병원은 ‘ㄷ’자형 한옥이고, 맞은편 별관은 다다미를 깔아놓은 일본식 집이다. 열어놓은 문으로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마당이 보이고 하늘이 펼쳐진다. 그래서 병원이 아니라 집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

한옥으로 지은 ‘임재양 외과’ 진료실. 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돼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박영채 사진작가 제공

한옥 건축으로 유명한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47·사진)가 설계한 이 일식 별관이 딸린 한옥 병원은 지난해 말 대구시 건축상 일반분야 금상을 받았다.

“1910년대 삼덕동1가를 중심으로 신작로가 생기면서 삼덕동엔 일본인들의 집단 주거지가 형성됐습니다. 지금도 한옥과 일제 강점기 행정기관의 사택으로 사용되던 집들이 남아있어요. 건축주가 사들인 터엔 한옥과 적산(敵産)가옥이 있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기억을 존중해 한옥이 있던 자리엔 한옥 병원을, 적산가옥 자리엔 일식 별관을 지었죠.”

총면적 385.75m²인 임재양 외과는 1층짜리 한옥 병원과 2층 규모의 별관 건물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다. 병원에 들어서면 마당에 온실처럼 꾸며놓은 아트리움에서 접수하고→한옥에 올라서서 탈의실에서 진찰복으로 갈아입은 뒤→대청마루에서 순서를 기다리다→한옥 방에서 의사를 만난다.

별관 1층엔 환자들이 묵어갈 수 있는 침실 2개와 거실 1개, 욕실이 있고 마당 쪽에 ‘엔가와’라는 일식 복도가 둘러져 있다. 2층엔 식이요법 강의와 요리 및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있다.

이곳에서는 병원에서 별관을, 별관에서 병원을 바라보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기단이 낮은 별관 1층 다실에 앉아 엔가와 너머 마당과 한옥을 바라보면 나지막한 눈높이에 와닿는 소박한 한옥이 안정감을 준다. 병원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통유리 너머로 마당을 지나 별관의 엔가와-거실-방으로 켜를 이루며 깊어지는 공간으로 시선이 이동하는데 이 역시 마음의 평안을 준다.

임 원장은 “바람이 잘 통하고 가습기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쾌적해 나와 간호사들이 모두 느긋해졌다. 그래서 환자들에게도 너그러워지고, 환자들도 집 같은 대청마루에서 기다려서인지 대기시간이 길어져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적산가옥이라는 ‘네거티브’ 문화마저 그대로 살려낸 조 대표의 고집에 대해 일부에서는 “건축가는 고고학자가 아니다”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는 “도시의 시간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는 2000년 11월부터 발품을 팔아 서울의 구석구석을 실측해온 ‘수요답사’에서 얻은 건축철학이다. 그의 우직한 답사 일정은 12년 넘게 이어져 최근 601회를 마쳤다.

“대부분의 건축가는 이 시대의 언어와 기술로 건축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하지만 저는 달의 뒷면을 보는 사람입니다. 12년간 도시를 세밀하게 살피고 다녔더니 도시의 나이테를 본 느낌이에요.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것들을 촘촘한 체로 거르듯 가급적 많이 살려내고 싶어요.”

스타 건축가들은 대개 건축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스타일을 드러내려고 한다. 하지만 조 대표는 건축의 주인공은 건축가가 아닌 건축주라고 했다. 2003년 서울 서대문구 한옥을 개조해 입주한 후부터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제가 살 집을 고치고 나니 너무 기뻤어요. 건축주의 기쁨은 설계자의 그것보다 10배는 더 크다는 걸 깨달았죠. 건축주에게 건물을 짓는다는 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고, 이를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계획합니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이런 작업에 개입해 건축주가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이지요.”

대구=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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