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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신정근]스마트폰 없는 새해

입력 | 2013-01-09 03:00:00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약속이 있으면 버스보다 지하철이 미덥다. 지하철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부담스럽지만 시간 때문에 속 끓이는 일이 적다. 근래에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승강장 계단을 내려가는데 전철이 눈에 들어왔다. 문이 닫히는 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냅다 뛰었다. 하지만 속절없이 문은 닫히고 전철은 바람 소리를 내며 내 앞을 휙 지나갔다. 좀 일찍 왔어야지 하는 생각보다 잠깐이나마 야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쁜 숨을 고르고 다음 전철을 기다리며 승강장을 서성거렸다.

눈을 들어 주위를 쳐다보았다. 전철이 방금 떠난 뒤라 승강장에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곳에 참으로 많은 것이 있었다. 여러 신문과 잡지가 사이좋게 늘어선 가판대와 화재를 대비해서 차분하게 놓인 소화기가 있었다. 쓰레기통은 옛날보다 훨씬 줄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서 뜻하지 않게 시를 만났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겐 보입니다/하루살이의 춤/사금파리의 눈물…”(서경은, ‘목숨’) 스크린도어 벽에 쓰인 시는 딱 내 처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앞차를 놓치고 뒤차를 기다리는 3, 4분의 여유가 나로 하여금 주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전철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여유 있게 올라탔다.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차량 안의 사람이 빼곡할 정도로 붐비지는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비슷한 자세로 비슷한 동작을 하고 있다. 의자에 앉은 이도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이도 너나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하고, 통화를 하는 이도 있다. 무표정하게 있다가도 스마트폰의 화면이 바뀌게 되면 부드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편으로 길지 않은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철을 타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반응 속도와 몰입 상태는 어떤 조종자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문득 장자의 기심(機心)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공(子貢)이 길을 가다가 한 노인이 항아리로 물을 지고 나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노인에게 두레박의 효율적인 원리를 알려주었다. 노인은 “기계가 생기면 뭐든 기계로 일을 하려고 하고 뭐든 기계에 기대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라면서 선진 기술의 제안을 사양했다.

스마트폰은 현대 사회의 총아이다. 현대인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도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바람에 부부가 상대의 스마트폰에 질투를 느낀다고 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빠져 세계와 소통하는 만큼 본인, 가족, 친구, 이웃 등은 나에게 의미 없는 존재로 멀어지게 된다. 전철을 놓치고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듯이 스마트폰으로부터 거리를 두면 자기 자신을 찾게 될 것이다.

요즘 나는 지하철을 타게 되면 시를 찾는다.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문무학, ‘바다’)라는 시를 만나서 행복했다. 새해는 우리를 위해 불철주야로 애쓰는 스마트폰에 휴가를 주고 우리 자신을 만나면 좋겠다. 술 담배 끊는 것만큼이나 스마트폰을 끊을 때가 된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