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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쪽지 돌리며 동참 호소… 中 광저우市난팡주말 파업 현장 르포

입력 | 2013-01-09 03:00:00

시민들 ‘언론자유’ 피켓에 관심… 本報고기정 특파원 현장 르포




 파업 이틀째인 8일 중국 광둥 성 광저우 시의 난팡주말 사옥 정문에서 경찰과 경비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위 사진). 사옥 앞 인도에서 자발적인 지지에 나선 시민들이 ‘난팡주말 사랑한다’, ‘난팡주말 보호하자’, ‘13억 중국인은 자기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는 푯말을 들고 있다. 한 시민은 민중봉기를 그린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면을 쓰고 나왔다. 광저우=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민주와 자유, 헌법에 의한 통치를 원한다.”

정부 당국의 기사 검열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중국의 개혁 성향 주간지 난팡(南方)주말 사태가 시민의 민주화 요구로 확산되고 있다.

○밤늦게까지 산발적 집회 계속

8일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 시 난팡주말 사옥 앞의 인도 한쪽을 차지한 언론 자유 촉구 시위대는 20∼30명이었지만 주변에는 200여 명의 군중이 몰려들어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후난(湖南) 성 출신 프리랜서로 광저우에서 일한다는 샤오(簫)모 씨는 “언론의 자유만이 중국의 부패를 해결하고 민주화를 가능케 하기 때문에 시위에 참석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 자유, 난팡주말 지지, 검열 반대’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들고 이날 오전부터 침묵시위를 벌였다.

대학생 셰(謝)모 씨는 “중학교 때부터 난팡주말을 봤다. (중국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언론이다”라며 “우리는 진정한 언론, 자유와 민주를 원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중국의 모든 매체는 정부가 조종하고 있다”라며 “자유와 민주를 원하는 시민의 요구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시민들에게 ‘알림쪽지’를 돌리며 동참을 호소했다.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A4용지 한 장짜리 알림쪽지는 “동포들이여 각성하라. 우리에게는 민족과 자손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지 않은가”라며 “절대 권력은 사람들(국가 지도부)을 마귀로 변하게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다. 집정자는 단지 백성에 대한 복무원(服務員·봉사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인도의 다른 한쪽에서는 난팡주말을 폐간하라는 반(反)파업 세력의 시위도 벌어졌다. 이들은 ‘공산당 지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지지, 한간(漢奸·매국노) 타도’라는 피켓을 들고 파업 지지 세력과 난팡주말을 향해 격렬히 항의했다. 이들은 파업 지지파가 외신 기자와 영어로 인터뷰하자 “영어로 말하는 저 놈도 매국노”라며 욕을 해대기도 했다.

이날 밤 늦게까지 산발적인 집회가 계속됐으며, 외신기자 수십여 명이 취재했다.

○새 지도부로 향하는 칼끝

지방 주간지의 ‘필화(筆禍) 사건’으로 종결될 것 같았던 난팡주말 사태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민주화 요구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정치 개혁을 원하는 인민의 요구가 폭발 직전까지 누적돼 있음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일 난팡주말 지지자들은 공산당 새 지도부의 개혁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저우의 한 변호사는 SCMP에서 “난팡주말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최근 광둥 성을 시찰할 때 내놓은 친 개혁적 신호에서 일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난팡주말 같은 합리적이고 온건한 목소리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지도부가 정말로 원하는 개혁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라고 말했다. 30대 회사원 허(和)모 씨는 “우리는 지금 자유와 민주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 동참하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관영 언론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산하 중국청년보의 인터넷판인 중국청년망은 “난팡주말은 공산당이 담당하는 난팡보업(報業)집단에 소속된 매체로 공산당 광둥 성 위원회의 보도사업의 일부이자 광둥 성 위원회 선전공작 대상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7일 사설에서 “중국의 사회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난팡주말 기자들이 요구하는 자유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난팡주말 사태가 중국 새 지도자들을 시험에 들게 했다고 7일 보도했다. 시 총서기가 숙고 중인 정치적 계획에 도전이 되고 있으며, 억압돼 온 개혁 요구와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공산당의 욕구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 총서기는 사치성 낭비를 근절하고 반부패 캠페인 등으로 큰 지지를 받지만 이는 또한 더욱 담대한 개혁 조치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난팡주말에 반대하는 관제 데모 성격의 시위가 8일부터 등장한 것은 강압 통치와 기층의 요구 수렴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는 집권 1년차 권력의 고민을 보여 준다.

광저우=고기정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