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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매년 한 작곡가씩 섭렵… 올핸 러시아 3인방”

입력 | 2013-01-10 03:00:00

피아니스트 윤철희씨




피아니스트 윤철희 씨의 부인은 바이올리니스트 배상은 씨다. 윤 씨는 “부부 음악가로 활동하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상대방의 연주에 대해 비평하는 것은 절대 금기다. 그걸 잊어 크게 싸운 채 무대에 오른 일도 있었다”며 웃음 지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봄의 제전’(1913)은 초연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원시 부족의 제의(祭儀)를 금관의 포효와 여러 타악기가 난무하는 난폭한 리듬으로 표현한 관현악곡. 이 작품을 피아니스트 윤철희 씨(45)는 피아노 단 두 대와 팀파니만으로 선보인다. 5월 18일 서울 목동 KT아트홀. 피아니스트 피경선(국민대 교수)과 타악 연주자 박윤이 함께한다.

“폭발하는 듯한 작품의 역동성을 피아노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지난해 드뷔시 탄생 150주년 기념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 ‘색깔’을 표현하는 것이 굉장한 경험이란 걸 새삼 깨달았죠.”

그는 2008년 베토벤을 시작으로 매년 한 작곡가에게 집중해 왔다. 2009년엔 멘델스존, 2010년엔 슈만과 쇼팽, 2011년엔 리스트. 3년 연속 ‘탄생 200주년 기념’ 시리즈였다, 지난해에는 탄생 150주년을 맞은 드뷔시를 조명했다. 올해는 ‘러시아 음악’이다. “올해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200주년인데 왜 러시아를…”이라고 물었다.

“피아노곡으로 편곡된 베르디와 바그너 곡은 있지만, 정작 두 작곡가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피아노곡은 드뭅니다. 마침 ‘봄의 제전’ 100주년이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 시절 사사한 은사 비탈리 마르굴리스(우크라이나), 에디트 피히트악센펠트(독일)를 떠올리며 피히트악센펠트 선생이 천착했던 스크랴빈 등을 더해 러시아에 집중하기로 했죠.”

올해 두 차례 더 여는 ‘러시아 시리즈’ 음악회 두 번째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5중주 등 실내악, 세 번째는 스크랴빈의 소나타 10번과 12개의 연습곡 작품 8 등으로 꾸밀 예정이다.

그의 ‘작곡가 집중 조명’ 작업은 매년 관현악곡을 실내악으로 편곡한 작업이 독특한 색깔을 더한다. 지난해에는 관현악곡인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했고, 2011년에는 리스트 교향시 ‘오르페우스’를 부인인 바이올리니스트 배상은, 첼리스트 우지연 씨와 연주했다.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 작업은 2008년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곡 전곡을 5중주로 바꿔 연주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초 생각은 협주곡을 관현악단과 협연할 기회가 적은 학생들을 위해 실내악으로 연주할 수 있는 ‘표준 악보’를 마련하자는 거였죠. 그런데 그 외의 효과를 많이 얻었어요.”

다양한 악기를 한정된 종류와 수의 악기로 줄이는 작업이 되레 음색에 대한 민감함을 더했다. 현악 파트에 참여한 솔리스트들이 ‘색다르고 멋진 경험’이라고 말했다. 피아노 파트도 훨씬 섬세하게 연주해야 했다. 악기 간의 음량 균형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 ‘봄의 제전’에서 피아노 두 대에 타악기 주자 단 한 명만 더한 것도 치열한 연구와 고민의 결과다.

2000년대 초반 매년 60∼70회의 연주를 소화하며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로 불렸던 그는 작곡가 시리즈에 몰입하면서 연주 횟수를 크게 줄였다. 준비 기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이런 작업이 행복해요. 몇 년 뒤엔 이미 했던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 보는 때가 오겠죠.”

매년 한 작곡가를 소화할 때마다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드뷔시를 치고 나면 쇼팽도 다시 보이는 식이에요. 한 음 한 음의 강약이 갖는 미세한 뉘앙스까지….” 그동안 내면에서 삭여 낸 것을 녹음으로 보존하는 작업도 계획 중이다. 첫 목표는 쇼팽의 발라드 전곡. 이르면 후년(2015년) 정도가 될 것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