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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명예회복 고민했지만 몸이 안따라주네요”

입력 | 2013-01-11 07:00:00

‘우리 딸, 고생 많았다!’ 10일 고양시청 체육관에서 열린 장미란(가운데)의 은퇴 기자회견에서 아버지 장호철 씨(왼쪽)와 어머니 이현자 씨가 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장미란은 “부모님 덕에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며 ‘세계 최고 역사’로 우뚝 선 공을 돌렸다. 고양|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눈물로 밝힌 은퇴 이유와 역도인생

런던올림픽 노메달 후 오기…3개월 고심끝 결단
역도 하면서 과분한 사랑 받은 나는 행복한 선수
박사 과정 매진…장미란 재단 통해 재능도 기부


“안녕하세요. 역도선수 장미란(30·고양시청)입니다.” 마이크를 잡고, 준비한 소감문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목소리가 떨렸다. 이내 ‘로즈란’은 뜨거운 눈물을 터트렸다. “다른 선수들 은퇴하는 것 보면서, 나는 울지 말고 ‘쿨’하게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테이블에서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 장호철(61) 씨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역도여왕’ 장미란이 10일 경기도 고양시청 체육관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15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스포츠동아 1월 8일자 1면·8면 단독 보도> 그녀는 은퇴 결심까지의 고뇌와 현역시절 행복했던 순간들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약 120∼130명의 취재진이 몰려 장미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장미의 볼에 이슬이 맺혔다.’ 많은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마음을 가라앉힌 ‘로즈란’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은퇴의 심경을 전했다. 고양|박화용 기자



○‘바벨 다시 잡을까, 놓을까’ 3개월간 이어진 심사숙고

지난 연말까지도 장미란의 은퇴 여부에 대한 체육계의 전망은 엇갈렸다. 주변에선 “2014아시안게임까지 선수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 연봉 등 선수생활 지속만으로 얻을 수 있는 수입도 만만치 않았다. 장미란은 “지난 10월 전국체전 이후 3개월 동안 고민을 했다. 선수생활을 연장하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 운동을 준비한 시기도 있었다. 은퇴 결정을 내린 것은 채 열흘도 되지 않는다”며 고뇌의 순간들을 전했다.

“런던올림픽 끝나고 나니, 은퇴해야 하는 분위기여서 더 오기가 생겼어요. ‘다시 잘 해서 멋진 모습으로 은퇴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운동이란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함께 원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여러 가지 달리는 부분들도 있었고…. 내 몸도 마음처럼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중간에 다시 (운동을) 하려고 진행하기도 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렇다고 바벨을 내려놓자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지인들과 상의를 하고 장래를 구체화화면서 확신이 생겼다. 지금은 앞으로 매진할 학업(용인대 박사과정)과 ‘장미란재단’ 사업에 대한 기대로 충만하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이라는 꿈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꿈을 주고, 사랑을 받았던 것에 감사 “나는 행복한 선수”

장미란의 머릿속에는 지난 15년간의 세월이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선수생활이 먼 훗날 그리울 만큼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우선 역도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 속에서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아무 꿈도 없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역도를 통해 국민의 사랑 받게 됐어요. 그 때만 해도 저는 덩치 크고 외적으로 자신 없는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위축된 친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런 친구들이 저 때문에 힘을 얻는다는 편지도 받아요. 저 역시 자의로 역도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른들은 소질이 있다고 보고 (역도를) 추천하신 것이잖아요. 어린 학생들이 자기 미래에 대해 혼자서만 고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진지한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에게도 귀를 기울인다면 좋을 것 같아요.”

‘장미란이 남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세계 최고의 여자 역사(力士)답게 “기록”이라고 답했다. 2005∼2009년 세계선수권 4연패(2005·2006·2007·2009년),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세계기록 경신 등은 영원히 빛날 업적이다. 그러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시상대 맨 위에 섰을 때가 아니었다. “런던올림픽(4위) 이후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전에는 제가 좋은 기록과 성적들을 많이 냈잖아요. 런던올림픽 준비하면서 (부상 등을) 많이 이겨냈지만, ‘그 이전처럼 (성원이) 많을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더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아, 내가 정말 사랑받는 선수구나’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장미란은 국민에게 받았던 애정을 꼭 되돌리겠다고 했다. 선수생활을 정리하면서, 향후 사회공헌에 대한 다짐을 잊지 않았다. “역도를 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제 평생 못 누릴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장미란재단을 통해 제 재능을 기부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태릉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는 대표선수들을 응원해주세요.”

고양|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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