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 미중년의 수다는 정오의 맛깔난 애피타이저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신비스러운 이미지의 뮤지션 윤상. 그는 KBS 라디오 스튜디오의 마이크 앞에만 앉으면 ‘미중년의 조곤조곤한 수다’를 쏟아낸다. KBS 제공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KBS 본관 앞 카페에서 만난 뮤지션 윤상(본명 이윤상·45)은 까만 뿔테 안경 아래로 눈이 작아지는 특유의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몇 회인지 일일이 세어보지 않았는데, 프로듀서가 말해주더라고요. 벌써 1000회라니….”
그는 2010년 4월부터 이 프로그램의 DJ를 맡았다. 데뷔 초(1991년) MBC FM ‘밤의 디스크쇼’로 라디오 진행을 시작한 윤상은 MBC ‘음악살롱’도 진행하며 꾸준히 청취자를 만났다. 2003년 시작된 7년간의 미국 유학(버클리 음대 뮤직 신서시스 학사, 뉴욕대 뮤직테크놀로지 석사)이 거의 유일한 ‘DJ 공백기’다. “청취자와의 만남은 팬과의 소통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 요즘은 청취자가 보내는 생활 유머가 너무 재밌어요.” 그는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생활 속 유머와 고급스러운 팝 음악을 버무리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팝스팝스’의 선곡은 대개 제작진이 하지만 매일 한 곡씩은 그가 추천한다. 1980∼90년대 인기 팝 음악과 최근 인디 음악, 월드뮤직을 함께 들을 수 있는 것은 그의 공이다. “늘 10곡 정도 염두에 두고 그날 날씨에 맞는 곡을 골라요. 일반 청취자들이 제 마니아적인 선곡에 반응을 보일 때 보람을 느끼죠.”
새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그는 지난해 2학기를 끝으로 3년간 맡은 교수직(상명대 대학원 뮤직 테크놀로지학과 초빙교수)도 내려놨다. 데뷔 때부터 함께한 작사가 박창학과 앨범 콘셉트를 논의 중이다.
윤상은 아이돌과도 인연이 깊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김완선의 백밴드 실루엣에서 베이스를 쳤고, 강수지 김민우에게 곡을 줬다. S.E.S. 동방신기 소녀시대 아이유의 곡도 만들어줬다. “요즘도 아이돌 곡을 만들고 있어요. 대중음악가로서 아이돌과 언제까지 함께 작업할 수 있을까도 숙제죠. 이 시대 대중과 여전히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저만의 ‘게임’인 셈이에요. 팝스타와 뮤지션이 공존하는 영국처럼 좀 더 다양한 장르가 대중의 사랑을 고루 받았으면 해요.” 그는 3년 전부터 해온 게임(‘아키에이지’) 음악 작업도 최근 마무리했다.
팝과 라디오의 인기가 하락한 요즘, 22년차 뮤지션 겸 DJ의 감회는 어떨까. “우리 것만 소비하고 살아도 바쁜 세상이죠. 하지만 종주국의 것을 제대로 들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제 음악 세계의 자양분은 중고교생 때 들었던 1980년대 신스팝(신시사이저 기반 팝)이에요. 전영혁 성시완 선배님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많은 걸 흡수했죠.” 그는 “인터넷은 라디오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자료는 방대하고 자유로움은 크지만 필터링이 안 되죠. 라디오는 좋은 정보를 균형 있게 접할 수 있는 좋은 매체예요. 좋은 음악 프로그램이 자꾸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40대 중반의 음악가 윤상은 지금 어딜 바라보고 있을까. “음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돼 있을 것을, (제가) 어렸을 땐 꿈도 못 꿨어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미를 느끼며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축복이죠. 10년이 지나도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내 음악에 대해 쑥덕거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