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순 이화여대 사범대 초등교육과 교수
지난해 12월 지역교육청으로부터 학교장 평가 의뢰를 받고 서울에 있는 30여 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각 학교는 나름대로 새로운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는데 이들이 분주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공립학교들은 교육과학기술부 정책, 해당 시도 정책, 지역청 정책 그리고 학교가 추진해 온 특색 사업 등을 교육 계획에 반영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이 항상 연관성이 깊은 것이 아니다. 정책을 위한 활동들과 교과 교육과정이 분리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문제는 이런 정책들을 모두 추진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어떤 하나의 교육정책이 나오고 학교에서 그것을 실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선 교사가 그 정책에 반영된 기본철학과 개념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고, 학교 나름대로 실천전략과 방법을 연구한 뒤 교육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워낙 오래 걸리다 보니 구체적인 시행도 하기 전에 또 새로운 정책과 교육과정이 나오게 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어떤 정책이 나오건 자신의 소신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일선 학교들을 방문했을 때 한 교사에게 “창의·인성 요소들을 교과에 어떻게 반영하느냐”고 물었다. 그 교사는 “원래 하고 있는 것을 트렌드에 따라서 이름을 붙이는 것일 뿐이지 변한 것은 없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교사는 “보이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내실 있게 가르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창의·인성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환경이 바뀌므로 우리는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창의성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했던 것들에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을 뿐이다. 특히 교육정책에 있어서는 하나의 완전한 정책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이상적인 교육정책일지라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반드시 그 반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각 학교에 자율성을 대폭 부여해야 한다.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일수록 일관성 있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어떤 교수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교육학이란 ‘남의 아이들을 어떻게 잘 가르칠까 연구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내 아이, 내 손자, 손녀를 위한 교육을 생각한다면, 교육정책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