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 (1821∼1867)
수많은 사륜마차들이 지나간 눈과 진흙의 혼돈, 장난감 등속과 봉봉과자의 번쩍임, 탐욕과 절망의 범벅, 가장 강한 고독자의 뇌리조차 혼란케 하는 대도시의 이 모든 공공연한 광란……새해가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혼잡과 뒤죽박죽의 한가운데를 채찍으로 무장한 무뢰한에 시달리며 분주히 뛰어가고 있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다. 당나귀가 막 보도의 모퉁이를 돌아가려고 하는데 장갑을 끼고 잔인할 정도로 넥타이를 꽉 매고 꼭 맞는 옷 속에 감금당한 듯, 요란하게 차려입은 멀쩡하게 잘생긴 한 신사가 이 보잘것없는 짐승 앞에 정중히 몸을 굽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자를 벗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행복하고 복된 새해를 기원하나이다!” 그러고는 거만스럽게 누구신지 알 수 없는 동료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치 자신의 기쁨에 그들이 동의해 줄 것을 간청하기라도 하듯.
나는 갑자기 이 사치스러운 천치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이 천치야말로 그 자신 속에 프랑스의 모든 에스프리를 축소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보들레르 사후에 출간된 시집 ‘파리의 우울’에 실린 시다. 세련된 복장과 품위 있는 몸가짐으로 ‘정신적 귀족주의’를 내세우는 댄디즘, 그 주창자인 보들레르는 치장만 완벽할 뿐 느끼고 생각할 줄 모르는, 즉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속물들을 지긋지긋해했다. 이 시에도 속물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배어나온다. 때는 19세기 중엽, 세밑의 혼잡한 파리 시내, 번지르르 차려입은 멀쩡하게 생긴 신사가 차가운 진창에서 혹사당하는 당나귀를 대상으로 익살을 떤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보자고 기어이 오버액션을 하는 것이다. 머리는 비고 심장은 차가운, 이런 속물! 속물도 사줄 만한 점이 있다. 잘 보이려고, 예쁘게 보이려고, ‘옷 속에 감금당한 듯’ 그토록 외모를 아등바등 가꾸다니, 보는 입장에서는 고맙고 기특한 일이다. 만국의 속물들이여, 미적 감각을 키우자!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