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고교 진학교사-대학 입학처장 설문
상당수 고교는 선택형 수능의 첫 시행을 앞두고 패닉(공황)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혼란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학습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지만 이를 곧이 믿는 예비 고교 3학년생과 진학지도 교사는 많지 않은 편이다.
올해 대학입시를 치를 수험생들은 지금까지 세부적인 대학별 입시요강을 제대로 모른다. 대학이 지난해 12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2014학년도 입시요강을 제출했지만 확정안을 발표한 곳은 서울대가 유일하다.
서울 선일여고 정주용 교사는 “대입 전형이 너무 복잡해 이제는 거의 어찌해 볼 방법이 없는 괴물이 돼 버렸다. 수능까지 영역마다 A, B형으로 나뉜다면 정말 답이 안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고교생 김준석 군(17)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A, B로 쪼개진 느낌”이라고 호소했다.
대학이 수시모집의 최저학력기준을 낮추지 않으면 A형으로는 수시, 정시 모두 성공하기 힘들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관광고 박흥서 교사는 “수시 최저학력기준에서 ‘A형은 1등급, B형은 2등급 이상’ 같은 식으로 B등급을 우대하는 곳이 나올 것”이라며 “선택에 너무 큰 혼란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보 설문 중 ‘대학이 발표한 A, B형 반영방법을 수험생과 학부모가 잘 알고 있다’는 질문에 서울진학지도교사협의회 소속 교사 20명 중 2명(10.0%)만 ‘그렇다’고 답했을 정도다. 새 시험이 ‘깜깜이 수능’으로 불리면서 입시계획을 짜는 데 혼란을 일으키는 현실을 보여준다.
서울 용산고 이용준 교사는 “시험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특히 중상위권 학생들의 불안감으로 교실이 폭발할 듯한 분위기”라며 “일부에선 지금 고3을 ‘저주받은 학년’이라고까지 부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수능과 선택형 수능을 비교할 때 더 적절한 방식’을 묻는 항목에 교사 20명 중 14명(70.0%)이 현재 수능이 더 적절하다고 답했다. 선택형 수능이 더 적절하다고 답한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한 일선 교사는 “대학이야 학생을 받는 쪽 아니냐. 선택형 수능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느긋해 보인다. 일선 고교만 더 죽을 맛”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학생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학교에선 뚜렷한 진학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면서 결국 사교육 업계만 웃게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서울 주요 학원가에서는 오히려 ‘선택형 수능 특수’를 누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노원구 중계동 등 학원가에서는 방학특강을 마련한 학원의 대부분이 ‘B형 수능’에 대비하는 수업만 개설했다.
김희균·신진우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