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캠프 참여했던 관료출신 중도인사의 희망, 좌절, 그리고 분노
安 대선후보 사퇴 기자회견 직후 지난해 11월 23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왼쪽)의 갑작스러운 후보직 사퇴는 그를 통한 새 정치의 희망을 키워가던 중도 세력에 깊은 슬픔과 좌절감을 줬다. 사진은 당시 사퇴 기자회견 직후 울고 있는 캠프 관계자를 포옹하며 위로하고 있는 안 후보. 동아일보DB
안 후보와 나는 생면부지다. 만나 본 적이 없다. 지난해 8월 어느 날 나에게 e메일을 보내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 대선 출마 선언(9월 19일) 한 달 전쯤이었다. 내 사무실에서 만났다.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저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야당의 패배로 저에 대한 국민의 압력과 지지가 더 커졌습니다. 마치 호출당하는 느낌입니다.”(안 후보)
솔직히 안 후보의 정치가로서의 자질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는 이상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기존 현실정치, 정치공학적 시각으로 본다면 그는 분명 아마추어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국민이 그를 지지했던 것 아닌가.
문재인 후보가 후보 단일화 TV 토론(11월 21일)에서 “안 후보의 대북정책이 이명박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공격했다. 안 후보는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를 포함해 캠프 참모들도 경제, 외교안보 분야의 공격거리, 그것도 문 후보가 꼼짝 못할 내용들을 많이 보고했다. 그러나 안 후보는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할 사람인데 그렇게까지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11월 23일) 안 후보가 후보 사퇴 직전 참모들을 불렀다.
“사퇴를 선언해야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길밖에는 국민의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캠프 내에서 나는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권력 분산과 견제 메커니즘을 세워 나가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갔다. 권력이 집중되고 검찰 등이 권력 수단으로 활용됐다. 박근혜가 (권력을) 잡으면 그런 구조가 그대로 갈 것 같았다. 그것이 위험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선은 졌다. 국민은 정치인들 머리 위에 있었다. 문 후보를 비롯해 그쪽 사람들은 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이었다. 박근혜가 민주당 쪽 사람인 김종인까지 끌어들여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해 갈 때 아마추어인 나조차도 ‘야당에 보통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부의 양극화, 세계화의 후유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가장 시급한 이슈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런 중요한 문제를 선점당하고도 ‘어, 어, 어’ 하며 지나갔다. 대책도, 전략도 없었다. ‘민주당(조직)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안철수를 눌러앉히더니 (대선에서는) 지리멸렬 속수무책이었다. 정말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은 역사에 대죄를 졌다.
나에게 박근혜는 모든 게 물음표(?)다. 권력의 분립과 상호견제라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있을까, 자기를 반대했던 사람을 모두 용서하고 품어 안을 아량이 있는 사람인가, 주변의 참모를 설득해 가며 그렇게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인가. 국민이 ‘이게 통합의 정치이고, 나는 찬성하고 지지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경제가 나쁠 때 ‘이 위기를 같이 극복해 나가자’고 얘기하지 못한다. 얘기해도 안 먹혀들어 간다. 박근혜가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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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부형권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