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는 지난 시즌의 악몽을 딛고 ‘뱀띠 해’를 맞아 소속팀 제주에서의 활약과 대표팀 복귀, 중앙수비수 최초 유럽 진출을 꿈꾸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작년 청천벽력 같던 십자인대 파열
올림픽 메달 꿈도 한순간 날아갔다
부모같은 심정으로 응원한 올림픽
홍감독님과 친해진 동료들 부러웠죠
작년말 독일서 재활…아픈기억 훌훌
올핸 방울뱀의 무서운 꼬리 돼야죠
조심스레 물었다. “다친 날 기억해요?”
홍정호가 괜찮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럼요. 윤하 생일이잖아요. 하하.(홍정호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수 윤하의 골수팬이다. 작년 말에는 동료 양준아와 윤하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그날따라 유난히도 구슬피 울었다고 한다. 홍정호 아버지 홍귀광(52)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만두고 서둘러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남FC와 홈경기를 위해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홍정호의 기분도 평소와 조금 달랐다.
“컨디션은 정말 최고였거든요. 그런데 뭐랄까요. 기분이 좀 야릇하더라고요.”
“아니 그 끔찍한 장면을 왜 갖고 다녀요?”
“가끔 봐요. 가끔씩…. 그냥 봐요….”
수술과 재활이 잘 돼 현재는 통증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헤딩 경합 장면을 볼 때면 몸이 움찔움찔한다. 바벨을 들며 무릎이 갑자기 꺾이는 상상을 할 때도 있다. 정신적 트라우마다. 홍정호는 조만간 심리치료를 받을 계획이다.
#악몽의 48시간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요. 계속 토하고…. 부상당하고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월요일 아침. 결과는 후반 십자인대 80% 이상 파열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의사는 “수술을 안 하고 재활하면 올림픽 일부 경기는 뛸 수도 있다. 대신 그 후 무릎 상태는 장담 못 한다. 수술하면 올림픽은 못 간다”고 했다. 홍정호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올림픽 안 가고 수술을 받겠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즉석에서 내릴 수 있었을까. 평생 한 번 밖에 못 나가는 올림픽인데. 더구나 홍정호는 홍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주장인데.
“제가 무리해서 가면 실력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100% 못했습니다. 팀에 민폐죠, 민폐. 우리 팀인데 그런 민폐를 어떻게 끼쳐요.”
#2012년 8월12일
홍정호의 생일이다. 공교롭게 런던올림픽 동메달 시상식이 열린 날이다. 홍정호는 동료들의 목에 빛나는 동메달이 걸리는 장면을 집에서 TV로 봤다.
“알고 있었어요. 올림픽 시상식 날짜를 계산해 보니 제 생일이더라고요. 만약 메달을 딴다면 생애 최고의 생일선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홍정호는 올림픽대표팀의 모든 경기를 생중계로 봤다.
“부모 같은 마음으로 봤어요. 너무 가슴 졸이고 떨리고 간절하게 응원했죠. 4년 동안 계속 준비를 했던 우리 팀이잖아요. 당연히 잘 하고 돌아오길 기원했죠.”
또 홍정호 입에서 ‘팀’ 이야기가 나왔다. 홍 감독이 그렇게도 강조해 화제가 됐던 ‘팀 정신’의 힘이 새삼 다시 느껴졌다.
#올림픽 후
동료들이 따온 동메달보다 더 부러운 게 있다. 올림픽이 끝나고 보니 선수들이 홍 감독과 부쩍 친해져 있더라는 것이다.
“애들이 감독님한테 너무 편하게 말해요. ‘이것 봐라? 장난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죠. 전 아직도 감독님이 어려운데…. 솔직히 좀 부럽기도 하죠.”
말 나온 김에 홍 감독에 대해 물었다. 홍정호는 말 대신 엄지를 들었다. “최고죠 최고. 미친 존재감.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2013년 부활을 꿈꾸며
홍정호는 작년 말 독일에서 3개월 정도 재활을 했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과 함께 머물며 분데스리가 경기도 많이 봤다. 머리가 맑아졌고 마음도 정리가 됐다. 이제는 다 훌훌 털었다. 홍정호는 1월 말 제주의 일본 오키나와 전훈에 합류할 예정이다. 서서히 감각도 끌어올려야 한다. 그는 “절대, 절대 무리해서 일찍 복귀하지는 않겠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제주의 부활과 6월 A대표팀 복귀 그리고 유럽 진출이 2013년 그의 소망이다.
“작년에 제주가 후반기에 부진할 때는 박경훈 감독님과 팀에 너무 죄송했어요. 올해는 제가 방울뱀의 독이 될 겁니다. 방울뱀은 꼬리가 공포의 대상이잖아요? 중앙 수비수인 제가 꼬리가 돼야죠.”
6월에 월드컵 최종예선 3경기가 연달아 열린다. 홍정호는 대표팀 선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전 경기 동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 진출.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확신을 갖게 됐고 자신감도 생겼다.
“유럽 선수들 피지컬은 정말 장난 아니에요. 그런데 분명 약점도 있더라고요. 빠른 것도 아니고 전방 패스가 좋은 것도 아니고. 피지컬 쪽만 보완하면 가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일 같은 빅 리그 아니어도 좋아요. 꼭 도전할 겁니다. 홍 감독님과 애들이 한국축구 올림픽 첫 메달이라는 역사를 썼으니 저는 중앙수비수 최초 유럽 진출이라는 역사를 써야죠.”
올해는 뱀의 해다. 홍정호는 1989년생 뱀띠다.
“제가 재작년과 작년에 팔을 두 번 수술하고, 승부조작 사건 터지고(홍정호는 2011년 여름 승부조작 파문에 휩싸였지만 검찰조사 의혹을 깨끗하게 벗었다) 무릎까지 다쳤잖아요? 저에게 삼재(三災)였죠, 삼재. 이제 다 끝났으니 난리 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홍정호?
▲생년월일 : 1989년 8월 12일
▲키/몸무게 : 186cm/77kg
▲포지션 : 중앙수비수
▲학력 : 제주외도초-제주중앙중·고-조선대
▲대표경력 : 국가대표, 올림픽대표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