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오늘과 내일/방형남]‘돼지저금통’ 통일 항아리

입력 | 2013-01-12 03:00:00


방형남 논설위원

이명박(MB) 정부의 통일 준비 출발은 요란했다. 이 대통령은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은 반드시 온다”며 “그날을 대비해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을 준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5년 임기의 중반, 권력 행사의 절정기에 서있는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곧바로 통일부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이 총동원돼 통일 준비 작업이 시작됐다. 통일을 주제로 한 각종 학술행사도 2010년 하반기를 거쳐 2011년 상반기까지 유행처럼 번졌다.

통일기금 4조 적립 기회 놓쳐

남북한 통일은 민족의 지상과제다. 목표를 이루려면 누구보다 정부가 앞장서서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책임을 통감했기에 광복절에 출발신호를 울렸을 것이다. 효과가 있기는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죽었던 통일 논의가 살아난 의미를 높이 평가하는 전문가가 많다. 독일 통일의 부정적 측면을 넘어 긍정적 측면으로 눈을 돌리는 시각 변화도 생겼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던 통일비용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 수치를 제시한 것도 성과로 볼 수 있다. 통일부의 연구용역에 참여한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2030년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10년간 734조6000억∼2757조2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안 교수는 통일 직후 1년간은 최소 55조9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다. MB 정부가 끝나가는 지금 통일 준비 실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주요 국정 성과를 열거한 자료에도 ‘통일비용보다 편익이 더 크며 준비된 통일은 남북한 주민과 주변국들 모두에 축복이 된다는 인식 확산’ ‘통일을 위한 재정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확산에 기여’라는 추상적 평가가 전부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남북협력기금의 통일기금 전환 실패다. 정부는 지난해 8월 국회에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거들떠보지 않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이 통일 준비를 독려하고 통일부가 적극적으로 국회를 설득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을 남북협력 및 통일기금으로 구분해 운용할 계획이었다. 남북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지원하기 위해 책정한 예산에서 남는 돈을 통일기금으로 적립하자는 아이디어였다. 2012년 남북협력기금 사업비 1조60억 원 가운데 불과 6.9%인 693억 원이 집행됐다. MB 정부 출범 첫해 18.1%를 기록한 뒤 2009년부터 4년 연속 집행률이 10%를 밑돌아 매년 1조 원 가까운 돈이 불용(不用)예산으로 남았다. 2009년부터 불용액을 통일기금으로 적립했다면 벌써 4조 원이 쌓였다는 얘기가 된다.

차기 정부 통일 의지 궁금하다

그런데도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엉뚱한 데 매달렸다. 그는 지난해 6월 ‘통일항아리’를 만들어 통일성금 모금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과 류 장관이 한 달 봉급을 내놓고 ‘자전거 국토 대장정’ 등의 캠페인을 한 덕분에 6억여 원의 성금이 모이기는 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규모의 통일비용을 일부 국민의 성금으로 감당할 수는 없다. 초대형 금고에 통일기금을 차곡차곡 쌓아도 모자랄 판에 돼지저금통 수준의 통일항아리를 만들어 놓고 이벤트에 몰두하는 통일부 장관이 안쓰럽다.

통일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고비를 넘기면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가 펼쳐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남북한이 통일에 성공하면 2050년 세계 9위 경제력을 갖춘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공약에 통일항목을 넣고 “작은 통일(경제공동체)에서 큰 통일(정치통합)을 지향하겠다”고 약속했다. 부도난 MB 정부의 통일 준비가 차기 정부의 통일 의지를 다지는 계기라도 됐으면 싶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