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고착화로 잠재성장률 훼손 우려… 재정지출 확대 등 대책 시급
11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장기화되고 있는 한국 경제의 낮은 성장률에 대해 이렇게 우려했다. 한은 안팎에서는 중앙은행 총재가 직접 ‘잠재성장률 훼손 가능성’을 언급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최근 우리 경제의 성장률 하락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한은과 정부는 올해 안에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 부문의 경제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은이 이날 내놓은 ‘2013년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의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은 0.4%로 7분기(21개월) 연속 1%가 안 됐다. 이런 장기 저성장은 산업화 이후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외환위기는 물론이고 오일쇼크,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0%대 성장률이 이어진 기간은 4분기(12개월)가 최장이었다.
‘0%대 성장’이 길어지는 원인은 안팎 사정이 모두 나빠서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기 회복세가 더딘 데다 국내의 소비심리와 기업투자 모두 얼어붙었다. 김준일 한은 부총재는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서 지난해 하반기 성장률이 당초 예상을 밑돌았다”고 말했다.
특히 설비투자는 당초 한은의 예상보다 크게 줄면서 지난해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지난해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2∼4분기 중 마이너스로 떨어지며 2011년에 비해 1.5% 감소했다. 설비투자가 3개 분기 연속 감소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8년 3분기(7∼9월)∼2009년 1분기(1∼3월) 이후 처음이다.
다른 부문도 저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건설투자가 0.9% 감소하는 등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경기 침체도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지난해 44만 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등 기대 이상의 고용 호조세를 보였는데도 가계부채 부담 등의 영향으로 민간소비 역시 회복세가 더뎠다.
한은은 지난해 하반기 성장률이 ‘바닥’을 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운 한은 조사국장은 “올해 상반기까지는 분기 성장률이 장기추세선인 1.2%를 밑돌 것”이라면서도 “소비심리 회복과 수출 증가로 국내 경기는 점차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경제 회복세가 미약한 데다 최근 환율이 급락(원화 가치 급등)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재정절벽 협상이 타결됐는데도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 국가) 역시 독일과 프랑스의 성장세 약화로 올해 마이너스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은이 재정지출 확대와 규제 완화, 금리 인하 등 한국 경제를 다시 성장궤도에 올릴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소극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새 정부 역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환율 급락을 감안해 규제 완화 등 적극적인 위기 대응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