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용차 무급휴직자 복직… 떠난 자-남은 자의 ‘3년 7개월’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키고 싶어요.”
11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노모 씨(52)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는 울릉도로 가고있다고 했다. 택배기사, 카센터 정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오징어잡이 배에 오르게 됐다.
노 씨는 인천 소래포구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고 동해로 가서 밤새도록 오징어를 잡는다. 배를 타지 않을 때는 세차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는 “2009년 8월 이후 내 삶은 무너졌다”고 말했다.
노 씨는 서울의 쌍용차 정비사업소에서 22년간 정비기술자로 일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아내, 외동딸과 함께 세 가족이 사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2009년 8월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가족의 삶은 위기에 처했다. 온 가족이 돈을 벌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20여 년 동안 전업주부로만 살던 그의 아내는 오전에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오후에는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일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딸은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노 씨는 “관련 업계에서 취업하려고 해도 ‘쌍용차’란 꼬리표가 달린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택배 일을 시작할 때는 예전 직장이 어디인지를 숨겨야 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정든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놓지 않았다. 그의 지루한 기다림은 3년 7개월간 이어졌다. 10일, 그에게 기대치 않은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소래포구에서 출항 준비를 하다 복직 소식을 들었어요. 받은 축하문자만 50통이 넘을 거예요. 기분이 좋아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잤습니다.”
하지만 노 씨는 이번에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동료들 생각에 가슴이 무겁다. 그는 “무급휴직자의 복직은 모두가 고통을 분담했기에 가능했다”며 “남은 이들이 조기에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풀어야 할 숙제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란도C’를 만드는 조립1공장 노조원 이모 씨(31)는 “함께 소주 한잔 마실 때마다 ‘제가 언제 회사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동료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며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동료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8년째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 씨(55)는 “‘나만 남았다’는 미안함 때문에 멀어졌던 옛 동료들과 모처럼 통화를 주고받았다”면서도 “고통 분담에는 공감하나 성급하게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다시 경영상황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당장 쌍용차는 늘어난 생산인력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고민이다. 평택공장의 가동률은 50%에도 못 미친다. 김규한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내년 말 1600cc급의 소형 SUV가 출시되면 연간 10만 대의 생산물량이 늘어나게 된다”며 “노조원들이 회사 정상화에 힘을 모아 무급휴직자뿐 아니라 1900여 명의 희망퇴직자들이 늦어도 2015년 초까지 일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정치 쟁점화되고 있는 정리해고자 문제는 쌍용차 노사에겐 큰 부담이다. 노조원 김모 씨는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정조사 논리는 억지”라며 “대법원의 판단까지 받은 사안에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우리가 빨리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씨는 지난 3년간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무자로 일하며 큰딸을 대학에 입학시켰다. 그는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인내심을 보여주게 돼 기쁘다”면서도 “회사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회사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평택=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