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당 모습을 보다 못한 뜻있는 당내 인사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전병헌 의원(서울 동작갑)이다. 그는 원내대표 선출을 앞두고 후보로 거론되자 “국민 앞에 나설 염치가 없다”면서 ‘자리’보다 ‘속죄’를 택하겠다는 차원에서 경선에 나서지 않았다. 새해 들어 그는 “2012년 대선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평가로 희망을 만들어가겠다”며 ‘2012 대선 성찰의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첫 번째 성찰 기록은 ‘50대를 위한 변명’이다. ‘단일화의 늪’과 ‘투표율의 덫’에 빠져 ‘50대의 불안감’을 놓쳤다는 게 그의 대선 패인 분석이다. 전 의원을 1월 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독선과 교만에 빠져 50대 못 읽어
“민주당이 독선에 빠져서 그렇다. 총선과 대선에서 연속 패한 것은 우리 당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독선과 교만에 빠졌기 때문이다. 국민은 총선 때 이미 우리 당에 옐로카드를 보냈다. 그런데 그 같은 국민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다. 특히 대선 승리의 분기점과도 같았던 50대의 불안감을 우리 당이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것이 가장 중요한 패배 요인이다.”
대선 이후 야권에서는 ‘50대 변절’을 입에 올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던 40대가 10년이 지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62.5%(방송3사 출구조사 기준)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에 대한 원망 섞인 푸념이었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50대를 탓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대선 성찰 기록에서 ‘단일화의 늪과 투표율의 덫에 빠져 대선에서 졌다’고 평가했는데.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 감동적인 단일화를 이뤘다면 우리가 가까스로 이길 수 있는 선거였다. 그런데 정작 감동 없는 단일화를 해놓고, 2030세대가 기권하면 우리가 2% 부족하다는 생각에 (2030세대) 투표율을 올리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청년실업 때문에 고통당하는 자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면서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50대의 불안과 고통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 당은 50대의 사회·경제적 불안을 어루만지지 못했다. 여러 좋은 정책이 있었지만, (2030세대) 투표 독려 구호 속에 50대를 겨냥한 정책을 제대로 부각하지 못했다.”
“답답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은 총선에 이어 정권교체에도 실패했다. 계파를 떠나 총선과 대선을 주도한 당 지도부나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를 주도한 인사들은 이번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구성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이 옳지 않겠나. 정당정치는 곧 책임정치다. 당 운영을 주도하고 선대위를 주도한 인사는 상대적으로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주류니 비주류니, 친노(친노무현)니 비노(비노무현)니 하면서 계파 간 찬반논쟁을 벌이고, 또 논쟁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 이번에 구성할 비대위의 성격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쇄신형이다, 관리형이다 얘기가 많은데, 이번에 구성할 비대위는 대선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는 평가를 하려면 (대선에 관여한) 이해당사자는 한발 물러나는 것이 옳다.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를 주 임무로 하는 비대위에 대선에 관여한 인사가 또다시 참여하려는 것은 정치 도의상 옳지 않다.”
▼ 총선 패배 이후 이해찬과 박지원의 담합으로 총선 패배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것이 대선 패배로 이어진 것 아닌가.
▼ 그 족쇄는 친노인가, 아니면 다른 세력인가.
“비대위를 꾸리고, 총선과 대선 전반에 대한 문제들을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아직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 특정 사람이나 그룹을 지칭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처절한 반성 통해 나아갈 길 모색해야
▼ 어떤 비대위를 구성하고, 어떤 비대위원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보나.
“대선 패배를 두고 ‘책임이 크고 작고를 논할 문제가 아니다’라거나, ‘1470만 표 얻었으니 패배가 아니다’는 식의 얘기도 맞지 않다. 1470만 표를 방패삼아 책임을 모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대선 이후 그 같은 얘기로 문제를 덮으려는 시도가 당내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다. 비대위에서는 우리 당의 문제와 대선 패배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정확히 내릴 수 있다. 그러려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해야 한다.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책임이 작고 객관적이면서 합리적인 인물이 (비대위를) 맡아 활동해야 가장 좋은 진단을 할 수 있다.”
▼ 친노나 특정 세력에 속하지 않은 전 의원이 비대위원장 적임자라는 얘기로 들린다.
“나는 아니다. 원내대표 경선에도 국민 앞에 나설 염치가 없어 나서지 않았다. 비대위에도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 비대위를 꾸리면 일차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야 한다고 보나.
“비대위는 냉정한 반성의 틀 속에서 민주당 내 시스템과 콘텐츠 전반을 처절하리만치 철저하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민주당이 왜 이길 수 있는 두 번의 선거에서 졌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비대위에서 처방까지는 어렵더라도 진단을 정확히 해야 그것을 바탕으로 차기 전당대회에서 선출한 지도부가 제 소임을 해낼 수 있다. 이번 비대위는 그런 씨를 뿌리는 구실을 해야 한다.”
▼ 패배 원인을 진단하면 책임 있는 사람이 누군지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나.
“비대위 구성도 안 끝났는데, 벌써부터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 중구난방이 되고 만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올 것이다. 객관적으로 대선 때 당 지도부도 있었고, 대선 캠프에 참여한 사람도 있었으며, 또 선대위에서 주도적 구실을 한 사람도 누군지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은가. 총선과 대선 패배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우리가 빠진 도그마에서 빠져나와야 민주당이 산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 민주당이 거듭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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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3년 1월 7일자 87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