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청 신청서 보니
지난해 11월 1일 서울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린 ‘2012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 서울 서래마을에 사는 한 외국인이 김장김치 담그기에 참여해 맛을 보고 있다. 김장문화에는 서로 돕고 베푸는 품앗이 전통뿐만 아니라, 함께 나누며 공동체로 하나 되는 정신이 담겨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아리랑이 인류문화유산으로 확정되자 다음 등재 후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대표음식 김치의 등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지자 ‘국가적 자존심’까지 거론되며 많은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이는 반쯤 맞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문화재청이 등재를 신청한 것은 ‘김치’가 아니라 ‘김장문화’다. 김치와 김장문화는 무엇이 다른가. 문화재청이 이달 수정 보완해 제출한 신청서를 중심으로 그 차이점을 짚어봤다.
문화재청이 이번 신청서 작성의 주 책임을 요리연구가가 아닌 문화인류학자인 박상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에게 의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청서는 자연친화적 재료로 발효건강음식을 만드는 전통방식인 김장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김장의 완성품인 김치가 한국 문화에서 지니는 위상도 강조했다. 한국인은 김치만 있어도 밥을 먹고, 진수성찬을 차려도 김치가 빠지면 서운하다. 세계 음식문화사에서 이런 독특한 위치를 지닌 요리는 드물다.
요리로 국한하면 상업적 이용의 소지가 생긴다는 점도 고려했다. 박영근 문화재청 문화재활용국장은 “유네스코가 가장 질색하는 게 인류문화유산의 정치적 상업적 연계”라며 “김장문화 자체는 김치처럼 상품화될 여지가 적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 문화유산의 현대적 정체성이 관건
김장문화는 이런 기준에 딱 들어맞는다. 지금도 기상청이 ‘지역별 김장 날짜’를 따로 발표한다. 가전업체는 해마다 신기술을 적용한 ‘김치냉장고’를 선보인다. 박 교수는 “한국 도시문화에서 김장문화는 여전히 생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며 “조선 궁중요리가 아쉽게 등재되지 못한 것은 이런 면이 다소 약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김장문화엔 가족과 이웃이 모여 품앗이하던 전통이 살아 있다. ‘사내가 부엌만 기웃거려도 흉’이라던 조선시대에도 김장은 남정네마저 팔을 걷고 나서는 ‘성역할 완화제(gender mitigator)’ 역할을 했다. 나눔과 배려의 정신은 21세기에도 겨울이면 불우이웃을 위해 김장을 담그는 문화로 이어졌다.
○ 고유하되 배타적이진 않아야
김치가 예부터 우리 민족이 즐긴 고유의 먹거리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역사보다는 김장의 개방적 성향을 강조했다. 해외에서 흘러들어온 배추나 고춧가루 등을 흡수해 더 수준 높은 음식문화로 발전시킨 ‘열린 문화’란 얘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