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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동영]고드름 따는 소방대원

입력 | 2013-01-14 03:00:00


조선 세종 8년(1426년) 2월 15일 한양엔 서북풍이 강하게 불었다. 노장용의 집에서 시작된 불은 바람을 타고 크게 번져 민가 2100여 채를 태웠다. 남자 9명, 여자 23명이 숨지고 부상자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 날에도 큰불이 나 민가 200여 채가 더 탔다. 이틀 새 당시 한양 주택의 6분의 1이 잿더미로 사라졌고 수많은 이재민이 거리로 나앉았으니 도성의 모습이 참담했다고 한다. 이때 내놓은 대책이 바로 ‘금화도감(禁火都監)’의 설치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기구다.

▷이후 조선시대의 소방기구는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성종) 멸화군(滅火軍·중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지금과 같은 ‘소방서(消防署)’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광복 이후에도 소방은 말 그대로 불 끄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소방에 재난 구조의 개념이 들어간 것은 1995년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대형 재난을 겪은 뒤 재난관리법을 만들면서 그해 10월 중앙119구조대를 창설했다. 2001년에는 중앙고속도로 구급대를 만들면서 구급업무까지 추가했고 2004년에는 정부조직법을 고쳐 ‘소방방재청’을 만들었다. 소방뿐 아니라 방재업무가 중요 국가사무로 떠오른 것이다.

▷어느 해보다 춥다는 이번 겨울에 나타난 새로운 풍경 하나가 고드름 제거다. 잦은 폭설에 기온이 뚝 떨어지다 보니 고층건물 고드름은 마치 거대한 기둥처럼 커져버렸다. 11일부터 낮 기온이 영상을 회복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질 위험이 크다. 자칫 행인이 죽거나 다칠 수도 있다. 소방대원이나 구조대원들은 연일 아슬아슬한 로프에 매달려 힘겹게 고드름을 깨고 있다. 폭염 때 기승을 부리는 도심 말벌 제거나 멧돼지 잡는 일도 이들의 몫이다. 잠긴 문 열어달라는 요청은 이제 구조구급 업무에서 빠졌지만 고양이를 구해달라는 요청에 출동한 소방대원이 추락사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소방기본법은 소방관서에서 소방 이외에도 산불이나 각종 재난으로 인한 피해의 복구, 생활안전 및 위험제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관기관이나 단체의 요청에 따른 소방지원 활동에 들어간 비용은 해당 기관에 부담시킬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건물에 매달린 고드름을 제거했다고 해서 건물주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일은 없다.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국민 정서 때문이다. 어쩌면 국민이 내는 세금 속에 그 비용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집 앞의 눈은 각자 치워야 하듯 건물의 고드름 제거 비용은 건물주의 몫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부는 수당도 제대로 주지 않아 소방관들이 시간외수당을 달라고 소송을 냈다. 고드름 따준 건물주에게 비용을 받아서라도 일한 만큼의 수당은 줘야 옳지 않겠나.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