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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국 사커에세이] 구단주가 선수계약 챙기는 유럽

입력 | 2013-01-15 07:00:00


이영표가 PSV아인트호벤(네덜란드)에서 토트넘(잉글랜드)으로 이적한 2005년 여름. 협상을 위해 토트넘의 홈경기장(White Hart Lane)을 찾은 나는 잠시 후 등장한 인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구단주인 다니엘 레비였다. 그는 경기장 스카이박스에 위치한 자신의 집무실에서 선수 계약조건을 직접 챙기는 한편, 난항을 겪고 있던 PSV와 이적협상에 훈수까지 해줬던 기억이 난다. 대리인 입장에서 유럽구단과의 협상은 늘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밤새워 준비를 해도 그들이 꺼내놓는 카드는 예상을 뒤엎기 일쑤다. ‘수 싸움’에서 벅차다고 느끼는 이유는 상대방의 협상력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절충점을 찾게 되면 그 다음부턴 일사천리. 구단의 책임자가 협상에 직접 나서는 만큼 그 결과는 그대로 계약서에 반영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유럽 구단과의 협상테이블에 앉은 상대는 단장격인 스포츠디렉터 아니면 구단주였다.

한국은 어떤가. 단장 혹은 심지어 사무국장이 협상테이블에 앉는 경우조차 드물고, 대부분 선수지원팀장 혹은 선수운영팀장이 그 많은 계약을 혼자 처리한다. 나름 구단에서 베테랑이라는 사람들이지만 결정권이 없다보니 대화가 막히고 서로 피곤해지는 경우도 많다. 실무자와 협상이 잘 됐더라도 단장 혹은 사장에게 보고 후 난감한 얼굴로 협상테이블로 돌아오는 경우도 숱하게 목격했다. 이때부터 ‘논리’는 사라지고 ‘윗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억지와 반격의 공방만이 남게 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사장(단장)이 선수대리인과 직접 대면하는 건 ‘격’이 맞지 않는다는 특유의 권위주의와 전문성 결여가 가장 큰 부분이다. 재벌이 돈을 대는 기업구단들의 경우 사장(단장)이 구단 행정보다는 ‘바깥일’에 더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고, 구단행정을 전담하는 경우에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심리가 없지 않다. 실무진은 똑같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책임은 책임대로 지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수계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수뇌부들이 간과하고 있다는데 있다.

유럽에서 선수계약은 ‘알파와 오메가’로 통한다. 어떤 선수를 데려오고, 어떻게 계약하느냐에 따라 구단의 흥망이 달라진다고 본다. 그래선지 경험 많은 선수대리인이 구단 단장으로 스카우트 되거나 거꾸로 단장을 하다가 대리인으로 변신하는 게 자연스럽다. 물론 백퍼센트 자립을 해야 하는 그들과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고 항변할 수 있다. 구단의 규모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프로구단도 자립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는 사실만은 자명하다.

(주)지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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