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대필’ 보도 이후 대학 심사강화”… 高3 학부모 ‘서울대 합격’ 소식 전해
발신인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는 수험생의 어머니. 아이가 한 달가량 밤잠을 설쳐 가며 자소서를 써왔다고 했다. 아이가 독서실에서 귀가하는 매일 오후 11시, 가족회의가 시작됐다. 때론 의견 충돌로 큰 소리가 오갔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을 돌아보며 진심 어린 자소서를 완성했다.
e메일의 마지막 줄엔 간절한 희망이 묻어났다. “돈으로 포장된 자소서와 정성과 진실이 담긴 자소서를 대학 입학처에서 구별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 자소서 대필 검증 더 엄격해진다
얼마 전 그 어머니로부터 또 e메일을 받았다. 1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이가 서울대 심리학과에 합격했다는 반가운 소식. 어머니는 거듭 고맙다고 했다. 자소서 대필 문제를 꾸준히 지적한 본보 기사를 접한 대학 입학처가 방향을 잘 잡고 미사여구에 현혹되지 않았을 거라고, 덕분에 아들도 자신감 있게 입시를 치렀다고 했다.
실제 자소서 대필 문제가 크게 불거진 뒤 대학들이 나름 ‘대필과의 전쟁’을 선포해 성과를 거뒀다. 심층면접을 통해 대필 여부를 검증하고, 수년 동안 쌓아둔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대필 자소서를 골라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도 ‘입학사정관제 지원서류 유사도 검증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대필 근절 의지를 보였다.
2014학년도 입시에선 대학별 자소서 검증이 더 엄격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는 일단 자소서를 꼼꼼하게 검토하기 위해 입학사정관 수부터 늘리기로 했다. 입학사정관 20명가량이 △검토하고 △서로 바꿔 본 뒤 △의문이 남는 자소서는 재검토하는 3단계 검증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그동안 ‘영업비밀’로 꼼꼼 숨겼던 대학별 학생 정보까지 공유될 것으로 보인다. 성균관대 김윤배 입학처장은 “학교별로 수험생의 상세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면 대교협이 이를 취합해 대필 블랙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대필 안 해야 기쁨이 10배
일선 고교의 분위기도 확실히 달라졌다. 서울 강남의 A고 교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필을 안 하는 건 무식한 짓이란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필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이젠 최소한 대필이 나쁜 짓이란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했다. 윤정수 군(고교 2학년)은 “대필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얼마 전까진 친구들끼리 대필 정보, 가격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대필이 완전히 근절된 건 아니다.
자소서를 직접 쓰는 게 시간낭비라고 인식하는 수험생도 여전히 많다. 이모 양(고교 2학년)은 “직접 써서 떨어진 선배, 대필해서 붙은 선배를 봤다.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질도 떨어지는데 왜 직접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핵심은 학생 개개인이 양심의 기준을 높이는 데 달려 있다. 장기적으로 대필이 본인의 재능을 갉아먹는 행위라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최근 대기업을 퇴사한 이모 씨(31)는 “학교 과제도 대필, 입사 원서도 대필, 한마디로 ‘대필 인생’이었다. 그렇게 입사하니 스스로 뭘 한다는 게 두려웠다”며 고개를 숙였다.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낸 어머니는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꾸준한 기록과 노력, 진실로 쓴 자소서가 좋은 결과의 지름길이죠. 그릇된 유혹과 타협하지 않을 때 합격통지서를 받고서 10배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