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아이돌 작곡가 장용진 더쇼뮤직 대표
단대부고 재학 시절, 가요 작곡과 헤비메탈 그룹 ‘각시탈’ 활동을 병행하며 이중생활을 했다는 장용진 씨. 이제 직접 노래는 못하지만 듣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더쇼뮤직 제공
H.O.T의 ‘캔디’(1996년)와 ‘행복’, UP의 ‘뿌요뿌요’와 ‘바다’, 태사자의 ‘도’(이상 1997년)를 만들며 1세대 아이돌 작곡가로 활약한 장용진 더쇼뮤직 대표(36). 그는 당대 히트 작곡가이자 가수(그룹 ‘루팡’ ‘동자’ 멤버)로 활동했는데도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1999년 최창민 2집(‘그녀의 뒤엔 항상 내가 있었다’ 작곡) 이후 가요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갑작스러운 ‘퇴장’ 후 인터넷에는 ‘몹쓸 피부병에 걸려 약초를 캐러 다닌다’ ‘폭력배까지 동원된 작곡 압박을 못 견디고 숨졌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지난해 큰 인기를 누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캔디’ ‘행복’ 등이 삽입되면서 그의 곡은 오랜만에 재조명됐다.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장 씨를 만났다. 그는 “숨으려 했던 건 아니다. 인터넷 루머를 보고 황당했다”며 활짝 웃었다.
“H.O.T라는 남성 그룹을 만드는데 멤버로 들어오는 게 어때?” 그는 이번에도 멤버 합류 대신 고교 때 작곡해둔 ‘캔디’를 건넸다. 그는 ‘캔디’에 이어 UP의 ‘뿌요뿌요’, H.O.T의 ‘행복’, 태사자의 ‘도’를 차례로 히트시켰고 여러 기획사에서 수천만 원을 싸들고 그를 찾아왔다.
그의 진짜 꿈은 가수였다. ‘(서)태지 형’이 그의 역할 모델이었다. 1997년 ‘루팡’, 1998년 ‘동자’를 조직해 무대에 섰지만 실패했다. “한창 작곡 일거리가 밀려들 때 일주일에 10시간밖에 못 자면서 캔커피와 줄담배로 견뎌냈죠. 1997년 성대 결절이 왔어요. 수술 후부터 목소리가 안 나왔고 큰 좌절감이 밀려왔죠.”
그는 “2000년 무렵, 제 성향과는 다른 히트 곡만을 반복해 요구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면서 작곡 활동까지 접었다”고 했다. “동요 같은 밝은 곡으로 유명해졌지만 늘 강한 힙합을 하고 싶었죠. 세상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더군요. 혼란스러웠어요.”
그는 2001년 제작사를 차리고 남성 댄스 그룹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계약 문제로 송사에 휘말렸다. “당시 폭력배가 찾아와 가요 제작을 하고 싶은데 곡을 달라고 한 일도 있었어요. 3일간 설득해 그냥 돌려보냈죠.”
“90년대 작곡가에 머물면 안 되죠. 제2의 음악 인생을 시작할 때입니다. 이제 노래는 못 부르게 됐지만. 듣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악을 만드는 게 여전한 저의 숙제입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