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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세… 환경… 꽉막힌 정책 ‘너지’로 푼다

입력 | 2013-01-15 03:00:00

■ 각국 정부 속속 도입




“인간의 두뇌와 심리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된 지금은 ‘너지(nudge·슬쩍 찌르기)’의 힘을 정책에 반영할 최적의 시기다. 너지를 활용하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고 세금도 더 잘 걷을 수 있다.”

‘너지’ 개념을 주창해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시카고대 경영대 리처드 탈러 교수와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008년 그들의 주장이 나온 이후 여러 나라에서 너지를 활용한 정책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너지는 ‘슬쩍 밀거나 찌르는 행위’를 말한다. 탈러 교수와 선스타인 교수는 이 단어에 ‘부드러운 개입으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행위’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에서 남자 소변기 중앙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이는 간단한 방법으로 소변이 밖으로 튀는 비율을 80%나 줄였다는 얘기가 익히 알려진 너지 사례다. 작은 변화로 사람의 행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너지의 매력.

미국은 너지 정책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 중 하나다. 선스타인 교수는 2009∼2012년 백악관 정보규제국 실장을 지내며 너지 정책을 직접 도입했다. 그는 ‘건강한 식습관을 갖자’는 구호 대신 학생들이 한 끼에 평균적으로 먹어야 하는 과일 채소 곡물 단백질 유제품의 양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급식판의 디자인을 바꿨다. 자격요건이 되는데도 근로자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30%나 되는 것을 발견한 뒤 특별히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가입되는 장치로 연금 가입률을 높이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세금을 걷는 데 너지의 힘을 빌렸다. 영국 총리실 ‘캐비닛 오피스’는 ‘행동통찰팀’이라는 ‘너지팀’을 별도로 두고 있다. 영국 세무 당국은 자동차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 소유자의 자동차 사진과 ‘당신의 자동차를 잃을 수 있다’는 문구를 함께 보내 세금회수율을 3배나 높였다. 영국 정부는 세금뿐만 아니라 과태료에도 이런 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 주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데 너지를 활용했다.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상투적 구호 대신 각 가정의 에너지 사용량을 이웃집이나 마을 전체의 사용량과 비교해서 보여주는 그래프로 그려 각 가정에 보낸 것. 세금 고지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발송하고 있다.

덴마크는 휴지통에 ‘탄소 발자국’을 그려 넣는 방법으로 쓰레기 양을 줄이고 분리수거 비율을 높였다. ‘탄소 배출을 줄입시다’라는 문구와 함께 새겨진 발자국만으로 주민의 환경의식을 더욱 높인 것. 한 대학은 전기 절약 구호를 스위치 바로 옆에 붙이는 간단한 방식으로 에너지 소비를 25%가량 줄였다.

너지가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덴마크의 한 백화점은 엘리베이터 앞 계단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계단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붙였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한 전문가는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리는 것과 달리 계단을 이용하는 것은 사회 규범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