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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운영 경쟁체제 도입논란 긴급 점검]경쟁이 힘의 원천

입력 | 2013-01-16 03:00:00

기반시설은 국가소유 그대로… 독점 운영권만 경쟁체제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철도 운영 경쟁체제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정부는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 출발 경부선과 호남선 KTX 노선부터 도입해 점차 확대할 방침이지만 기존 독점 운영권자인 코레일의 반발이 거세다. 사진은 고양 KTX 차량 기지. 국토해양부 제공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잠시 주춤했던 철도 운영 경쟁체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새해 벽두부터 재점화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토해양부와 철도 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코레일 간의 기싸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서비스 향상, 요금 인하, 코레일 경영 효율성 제고 등 다양한 효과를 내세워 경쟁체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철도 운영 경쟁체제 도입은 시설 매각이나 코레일 지분 처분 등을 통한 민영화와는 성격이 다르고 법 개정도 필요 없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9일 철도산업기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코레일이 갖고 있는 철도관제권을 정부가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코레일 측은 경쟁체제 도입이 민영화로 가기 위한 수단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관제기능이 이원화돼 안전성이 떨어지고 요금도 인상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주무 정부 부처와 산하 공기업이 팽팽히 맞서며 해를 넘긴 철도 운영 경쟁체제 도입 논란의 쟁점을 긴급 점검해본다.

○ “사회적 합의 거쳐 추진됐다”

과거에는 철도 건설과 운영이 통합돼 있었다. 규모의 경제 때문에 각국 정부가 독점적으로 철도를 건설하고 운영해왔다. 그러나 독점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유럽 일부 국가와 일본 등 상당수 국가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건설과 운영을 분리하는 철도구조개혁을 시작했다.

한국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철도산업기본법’ 등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했고, 2004년 건설 및 시설 관리와 운영을 분리하는 ‘철도구조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단계별로 진행돼 왔다. 공공성과 규모의 경제가 인정되는 건설과 시설 분야는 공공기관인 철도시설공단이 담당하고, 철도 운영 부문은 선로 개방을 통해 코레일과 민간이 경쟁을 하도록 한다는 게 기본 틀이었다.

이런 철도구조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는 수서발 고속철도 운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에서 출발하는 경부선과 호남선 노선부터 운영 부문에만 경쟁 체제를 도입한 뒤 기존 노선으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 정부와 코레일의 갑론을박

정부의 이런 계획은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가 민간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코레일의 심한 반대에 직면해 있다. 경쟁체제 도입은 철도 민영화와 다름없다는 것이 코레일의 주장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철도 기반 시설은 국가 소유로 남고, 철도 운영에만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어서 민영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철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철로 건설 및 시설 관리는 계속해서 국가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코레일 측은 경쟁체제 도입으로 안전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안전은 운영 주체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며 이 같은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유럽 등 상당수 국가에서 복수의 민간 사업자가 참여하면서 안전이 오히려 향상됐다는 통계도 제시하고 있다. 항공 분야에서도 다수의 복수 사업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

요금을 둘러싼 주장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코레일은 민간기업이 참여할 경우 수익을 내기 위해 요금을 인상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사업 참여 조건에 요금을 최소 15% 인하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어 기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대기업 특혜 가능성 역시 대기업 지분을 49%로 제한해 사전에 차단할 계획이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 경제적 효과 연 6000억 원

철도 운영에 경쟁체제 도입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코레일 독점 체제 대비 약 20%의 운임 인하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이는 현재 서울∼부산 간 KTX 요금이 1만5000원 정도 떨어지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국토부가 추산하고 있는 경쟁 도입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연간 6400여억 원에서 최대 7200여억 원에 이른다. 15년간 임대할 경우 최대 10조8000여억 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요금 인하에 따른 편익 연간 2004억 원 △선로임대료 수익 연간 1199억∼2000억 원 △사회적 편익 연간 1427억 원 △비교경쟁 효과 연간 1800억 원 등이다. 1000여 개의 일자리 창출, 산업 경쟁력 강화 등의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 네덜란드에도 철도 운영회사 11개

일찌감치 민간에 시장을 개방한 국가들을 보면 경쟁의 효과는 명확해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1987년 기존 국철을 7개 회사로 분할, 경쟁에 들어갔으며 민간 사업자도 150여 개나 된다. 경쟁 도입 후 1986년 1조3000억 엔이었던 운영적자는 구조개혁 이후 흑자로 전환했다. 20년 동안 사실상 요금도 동결했다.

독일은 1994년 철도 구조개혁 이후 인건비가 10% 감소하고 수요는 15% 증가했다. 오스트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미국 이탈리아 등도 경쟁체제를 시행 중에 있다. 특히 이 중 네덜란드는 국토와 인구가 남한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철도 운영회사가 11개나 된다. 국내 철도에 경쟁을 도입하기에는 규모의 경제가 없다는 일각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내 철도망은 코레일의 독점 운영하에서 조금씩 늘었지만 규모의 경제로 인한 평균 비용 감소에 따른 요금 인하는 없었다”고 말했다. 철도 건설은 국가가 하고, 운영은 여러 사업자가 하는 다른 교통수단처럼 철도도 건설은 국가가 하되, 운영은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애플공습’ 막고 세계 1등된 삼성처럼 경쟁은 우물안 개구리들을 날게 한다 ▼

■ 독점시장 해소 좋은 사례들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는 철도 운영에 민간 참여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지만 경쟁이 효율성과 서비스를 높여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간 사례는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도로, 항만, 공항 등 국가 주요 기반 시설 가운데 아직까지 운영에 민간이 참여하지 못하는 곳은 철도가 유일하다는 게 국토해양부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새해 들어 일부 차량의 국내 판매 가격을 내렸다. 국내 자동차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해가 바뀌거나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가격을 올렸던 것에 비하면 흔치 않은 일이다. 가파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수입자동차와의 경쟁이 불러온 효과다.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서 독주하면서도 세계무대에선 2, 3위에 머물렀던 삼성전자 역시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도입된 후 절치부심 끝에 갤럭시 시리즈를 내놓으며 세계 최대 휴대전화 업체로 부상했다.

1988년 정부가 금호그룹에 제2 민간항공사 설립을 허가할 당시 대한항공은 온 힘을 다해 저지하려 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국적 항공사는 하나로 충분하고 전문성과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2개 항공사는 모두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항공사로 자리 잡았고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경쟁이 기업을 성장시키고, 그 과실이 소비자에게 돌아간 것이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공기업 독점 시장에 민간기업을 참여시켜 성공한 사례 역시 적지 않다. 한국통신이 독점하던 통신시장에 1990년대 이후 다양한 민간사업자가 차례로 진입하면서 기술개발과 서비스 품질 향상 경쟁으로 한국은 통신 강국 반열에 올랐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통신시장에 민간 사업자의 참여는 경쟁체제 도입일 뿐 KT의 지분 매각을 통한 민영화와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나 공항처럼 철도시설은 여전히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코레일도 공사(公社) 형태로 존속하기 때문에 민영화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레일 측은 정부의 철도 운영 부문 경쟁체제 도입을 ‘민영화’라고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경쟁체제 도입과는 거리가 있지만 민영화를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사례도 적지 않다. 포스코, KT는 민영화 이후 경영효율성, 고객 서비스가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중공업을 민영화한 두산중공업은 담수화, 원전 설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으로 꼽히고 있으며,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