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 본드흡입 유행처럼 번져
○ 일진회 중심으로 본드 불어
이진성(가명·14) 군의 ‘첫 경험’은 지난해 4월 그렇게 시작됐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상가건물 옥상에서였다. 그가 흡입한 물질은 환각 성분이 강한 톨루엔이 포함된 공업용 본드였다.
얼굴이 곱상하게 생긴 이 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인기가 많았다. 합기도를 오래 배워 싸움도 곧잘 했다. 중학생이 되자 ‘일진회’(교내 폭력 서클)가 내버려두지 않았다. 반강제적으로 가입을 권유했다. 이 군도 싫진 않았다. 막연하게나마 일진 선배들이 멋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가입한 뒤 이어진 ‘신고식’이 본드 흡입이었다.
일진회를 중심으로 본드에 손을 대는 10대가 늘고 있다. 특히 방학을 맞아 ‘본드 불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1990년대 10대의 본드 흡입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됐었다. 1997년 어느 사회복지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한 번이라도 본드나 부탄가스를 흡입한 경험이 있다’는 고교생이 5%에 이르렀다. 다행히 본드 흡입 청소년 비율이 꾸준히 줄었는데 최근 몇 년 새 다시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대검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위반으로 검거된 청소년(10세 이상∼19세 미만)의 수는 2008년 423명에서 2009년 501명, 2010년 876명, 2011년 1182명으로 늘었다. 인천경찰청의 ‘미성년자 유해화학물질 위반 현황’을 살펴봐도 환각물질에 손을 대 경찰에 적발된 10대의 수는 2009년 24명에서 2011년 374명으로 16배 가까이 증가했다.
본드 흡입의 중심에는 최근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일진회 등 폭력서클이 있다. 서울 A중학교 일진인 정모 군(15)은 “담배는 개나 소나 다 피운다. 본드 정도는 빨아줘야 뭔가 있어 보이지 않냐”고 했다. 신고식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나름의 기념일에도 본드를 흡입한다는 게 그의 설명.
○ 본드 흡입 발견 시 조기진화가 핵심
일단 본드 등 환각물질을 구하기 쉽다는 게 가장 문제다.
인천 YMCA청소년재단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인천 시내 8개 구 165곳의 본드 판매업소(철물점, 문구점, 마트 등)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65곳(95%)에서 청소년에게 본드를 팔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성인 인증 절차는 거칠 필요가 없다.
본드 흡입의 폐해는 심각하다. 반복적으로 흡입하면 호흡기와 심혈관계에 큰 손상을 준다. 신경계에 미치는 파괴력도 크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그러한 행위가 얼마나 나쁜지 학교나 가정에서 알려주는 게 우선이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호기심에서 본드에 손을 댄다.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환각 물질의 위험성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만 알려줘도 본드 흡입 청소년 비율을 절반가량으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본드를 흡입했을 경우 ‘조기진화’가 필요하다. 본드는 중독성이 강해서다. 중독성이 더 심한 물질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도 무섭다.
의학계에선 보통 5회 이상 본드 흡입을 반복하면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본드 흡입 사실을 알았다면 횟수에 상관없이 반드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하라고 권한다. 물리적인 치료와 정신 교육까지 병행해야 완전히 유혹을 차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본드 중독을 치료할 때 전문 의료진은 물론이고 부모까지 치료에 동참해야 완전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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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