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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태원]커트 캠벨의 마지막 訪韓

입력 | 2013-01-16 03:00:00


한때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인기가 상한가를 칠 때가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를 거쳐 2005년 4월 차관보가 된 뒤 “모든 북한 문제는 힐로 통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노력이 활발하던 시절,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를 지낸 덕에 힐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기사가 됐다. 미국대사로는 처음으로 광주 5·18기념공원을 참배했고 사찰에서 발우공양을 할 정도의 쇼맨십을 갖춘 힐은 언론과의 만남도 즐겼다. 정부 당국자와 만난 뒤 그 결과를 공개된 장소에서 언론에 약식 브리핑하는 도어스테핑을 너무 좋아해 부하 직원들에게 ‘심대한 고통’을 안겼다는 소문(笑聞)도 있었다.

▷어제 방한한 커트 캠벨 차관보 역시 도어스테핑의 달인(達人)이다. 특별히 브리핑할 내용이 없어도 언론과의 만남을 자처해 영화배우 뺨치는 매너와 세련된 입담으로 한미 공조의 완벽함을 강조한다. 기분이 좋아지면 거꾸로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즉석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말미에는 “더 질문할 내용이 없느냐”며 기자들을 배려하는 성의도 보인다. 서울 삼청동에서 밤낮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들과 숨바꼭질을 하는 기자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이야기다.

▷이번 캠벨의 방한은 18번째. 평균 2.4개월에 한 번꼴로 한국에 온 셈이다. 하지만 캠벨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다. 2009년 9월 이명박(MB) 대통령이 야심차게 제안한 대북(對北) ‘그랜드 바겐’에 대해 “정말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실언한 것. 발끈한 MB도 “‘아무개’가 모르겠다고 하면 어떠냐”는 가시 돋친 말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놀랍게도 이 설화(舌禍) 직후 캠벨은 MB 리더십의 전도사가 된다. “다른 어떤 외국 지도자도 보여주지 못했던 긍정적이고 신뢰감 있는 리더십을 펼치는 분” “생각을 가장 또렷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분”…. 모두 캠벨의 ‘MB어천가’다. 한미관계에 대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관계”라는 표현을 가장 먼저 쓴 사람 중 하나도 캠벨이다.

▷캠벨도 과거에는 일본통이었다. 예전 아시아 연구는 일본 연구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현재는 대개 중국을 전공으로 삼는 것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4년간의 공직을 마치고 학계로 돌아가는 캠벨이 한국 마니아가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동북아 순방 루트가 한국-일본-중국 순으로 바뀌었고 일본보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는 한국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만나고 일본으로 건너가 관방장관, 외무상 등을 면담한다고 한다. 한일관계 재건(rebuilding)에 대한 미국 정부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라니 그 내용이 궁금하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