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어제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신설, 해양수산부와 경제부총리제의 부활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대로 개편된다면 새 정부는 현행 ‘15부 2처 18청’ 체제에서 ‘17부 3처 17청’으로 바뀌게 된다. 역대 정부의 조직 개편은 시대 변화를 반영할 뿐 아니라 그 정권의 국정 철학과 미래 비전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정보통신기술(ICT) 콘텐츠 서비스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새로운 일자리와 시장을 창출한다’는 창조경제론을 앞세웠다. 글로벌 차원의 무차별 경쟁으로 인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 복지를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미래부 신설로 나타났다. 인수위는 정부부처 간에 복지 정책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의 강화 방안도 추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ICT를 담당하는 독립 부처를 세우는 대신에 미래부의 차관이 관련 업무를 관장토록 한 것은 실망스럽다. ICT는 스마트혁명과 결합돼 쇼핑 학습 의료 등 산업의 형태를 크게 바꿔놓을 ‘미래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변화의 흐름을 내다보고 대비하면서 국무회의나 국회에서 충분한 전문성과 책임을 가지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 반면에 기초과학은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당장 미래의 먹을거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ICT와는 차이가 크다. 같은 과학기술이라고 하지만 성격이 판이한 두 분야를 한바구니에 넣음으로써 정책의 불균형이나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해양부의 부활이 과거처럼 해운 항만과 수산 분야를 단순 조합하는 조직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면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국제적인 해양 분쟁에 적절히 대처하고, 다양한 해양 이슈에서 국익을 지키는 조직이라야 의미가 있다. 새로운 해양부는 현장 중심의 연구개발을 적극 추진해 해양수산 분야의 과학기술력을 세계 수준으로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도시 일각에서 나오는 ‘해양부 유치’ 주장은 눈앞의 이익에 몰두해 해양부를 고립시키고 군소 부처화로 이끄는 단견(短見)이다. 해양부는 관련 정부 부처들과 함께 있어야 부처 사이의 활발한 협조가 가능해지며 한국의 해양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박근혜 정부가 보수 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시장 기능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의 권한과 책임이 강화된 ‘큰 정부’ 기조를 택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통상 보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한다. 정부조직은 환경 변화와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따져 결정할 일이지만 ‘큰 정부가 보수 기조에 맞느냐’는 논란은 이어질 것 같다.
정부조직은 가(假)건물이 아니다. 정부조직이 경직돼 시대 변화에 뒤처지면 안 되겠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을 뗐다 붙였다 하고 부처 명칭을 바꾸는 관행은 이제 버려야 한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은 정부의 조직이나 부처의 명칭 변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에 맞는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올바로 구현된다. 간판부터 바꿔 다는 것은 실효성 없는 전시행정이며 국민에게 혼란만 준다. 꼭 따라 할 일은 아니지만 200여 년 전 미국 건국 당시 재무부는 지금도 재무부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의 큰 특징 중 하나는 5년 전 폐지된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를 되살리거나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이번에 정부조직 개편이 필요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개편이 너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