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광기 등 日사회 금기 도전… 재일한국인 차별에도 큰 관심
그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검열, 광기 등 일본 사회의 금기에 도전하며 문제작을 선보였다. 특히 1960년에는 ‘청춘 잔혹 이야기’, ‘태양의 묘지’, ‘일본의 밤과 안개’ 등을 잇달아 제작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도 관심이 깊었다. 한국 초등학생의 일기를 다룬 ‘윤복이의 일기’(1965년)와 일본인 여성 2명을 살해해 미성년자인데도 교수형을 당한 재일 한국인 이야기를 담은 ‘교사형’(1968년) 등 4편을 남겼다.
교토대 법학부 출신인 오시마 감독은 1955년 쇼치쿠(松竹) 영화사에 조감독으로 입사했다. 이후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1959년 ‘사랑과 희망의 거리’로 데뷔했다. 비둘기를 파는 가난한 소년과 부르주아 소녀의 로맨스로 비둘기를 사살하는 마지막 장면이 논란이 돼 2류급 영화관에서만 개봉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인간의 내면과 개인의 문제로 관심사가 옮아갔다. 1983년에는 데이비드 보위,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등 호화 배우들과 함께 서양인에 대한 일본인의 이중성을 담은 ‘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로 명성을 재확인했다. 1987년 ‘막스 내 사랑’을 만든 이후 13년 만에 ‘고하토’를 촬영하던 중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해왔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