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탈북’ 제작 PD들의 뒷얘기
10개월짜리 아기를 업고 탈북한 여성은 “힘들지 않느냐”는 PD의 질문에 “힘들어도 가야죠. 이미 떠난 길인데”라며 각오를 다졌다. 채널A ‘특별취재 탈북’은 15명의 집단 탈북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채널A 방송화면.
"방송을 보고 울고 또 울다 밤잠을 못 잤습니다."
채널A가 방송한 탈북 다큐멘터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13일 방송한 '특별취재 탈북' 1부 '강을 건넌 사람들', 2부 '마지막 국경'은 방송 이후 더욱 화제가 됐다. 제작진 앞으로 탈북자들을 돕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다. 특히 일곱 살 꽃제비 진혁이를 후원하고 싶다는 시청자가 많았다.
15명의 집단 탈북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프로그램의 제작 주역은 탈북자들과 20일간 동행한 양승원 PD(36)와 강태연 PD(31)였다. 15일 만난 두 PD는 "언제든 잡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잡혀도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며 방송에 다 담지 못한 뒷얘기를 꺼냈다.
●탈북자들과 생사를 함께 하다
이 때 강 PD는 먼저 강을 건너온 성인 탈북자 그룹과 중국 모처에 마련한 안전가옥(안가)에 은신하고 있었다. 불빛이 새나갈까 커튼으로 창문을 꼼꼼히 가리고 주민들이 수상히 여겨 신고할까봐 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에서도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의 위기를 담담히 준비하는 탈북자들의 모습은 강 PD에게는 충격이었다. "안가를 떠나기 전에 잡히면 죽겠다며 면도칼을 종이에 싸서 준비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죠."
양승원 PD와 진혁이
강 PD는 성인 탈북자들과 함께 버스로 A국 국경까지 이동했다. 버스를 갈아 탈 때마다 곳곳에 깔린 중국 공안들을 피해 다녔다. 3일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신분이 노출될까봐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하루 한 번씩 들르는 휴게소에서였다. 탈북 여성과 차에서 내린 강 PD에게 공안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다행히 탈북자는 중국어를 할 줄 알았고 강 PD는 여권을 소지하고 있어 위기를 넘겼다. 강 PD는 "만약 버스에 여권을 두고 내렸다면 신분증이 없다는 점을 수상히 여긴 공안에게 버스 안 탈북자들이 발각될 수 있었다"고 했다.
A국으로 들어간 두 PD와 15명 탈북자들의 다음 목적지는 B국이었다. 양 PD는 탈북자들과 함께 B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밀림을 건넜다. 일행 중에는 10개월짜리 아기를 업은 여성도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아기가 울면 군인들에게 들킨다며 수면제를 먹이자고 했다. 탈북자들과 안내인의 중재 역할까지 했던 양 PD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다행히 아기는 밀림을 빠져나오는 4시간 동안 울지 않았다. 양 PD는 "아기 엄마가 장화를 신고도 밀림에서 제일 잘 뛰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위대한 모성애였다"고 전했다.
새벽 4시가 돼서야 밀림을 빠져나온 일행. 양 PD는 약속장소에 대기하고 있던 강 PD에게 그동안의 촬영 영상을 담은 메모리칩을 인계하고 다시 밀림을 거슬러 A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B국에서는 그도 밀입국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군인에게 들킬 수 있는 상황. 그는 밀림을 뛰어 2시간 만에 A국으로 되돌아가는데 성공했다. 흙이 섞인 시냇물을 마시며 환호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같더라고요."
20일간 함께 생사를 넘나든 PD들은 탈북자들과 친구가 됐다. 강 PD는 또래 여성 탈북자들에게 "한국이 생각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닐 수 있다. 경쟁도 굉장히 치열하다"고 말했다. 돌아온 답변은 "어디라도 북한보다는 낫다. 노력한만큼 살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양승원 PD(왼쪽에서 두 번째)가 탈북자들과 포즈를 취했다.
양 PD는 진혁이의 아빠 역할을 하며 실제 부자지간처럼 가까웠다. "TV에서 보면 진혁이가 동글동글 통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곱 살은커녕 서너 살 정도로 보일만큼 작아요. 그래도 참 똑똑하고 예쁘죠."
'특별취재 탈북'은 양 PD가 진혁이에게 한국에 가면 뭘 하고 싶냐고 묻는 장면으로 끝난다. 진혁이의 대답은 '일' 이었다.
두 PD는 "아직 과제가 남아있다"고 입을 모았다. "제3국에 머무르고 있는 진혁이와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어떻게 적응하고 살 수 있을까…. 그 다음 얘기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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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