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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년차 고졸 맞나요?

입력 | 2013-01-17 03:00:00

■ 은행원 3인 깜짝 스토리




2011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은 IBK기업은행을 방문했다. 한 달 전 입사한 고졸 사원 20명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은행들에 고졸 사원 채용을 독려했던 이 대통령은 이들에게 “훌륭한 선택을 했다”며 격려했다.

면담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한 명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대통령님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뭘 하셨어요?” 이 대통령은 “나도 야간 상고 출신이라 월급을 제대로 받는 게 소원이었다”고 답했다. 대통령을 향해 돌발 질문을 날린 주인공은 반월공단 지점에서 일하는 최승현 계장(20·여). 그는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우리한테는 학력 상관없다고 말해 놓고, 정작 대통령은 대학 입시 준비했다고 하면 따지려고 그랬죠.”

○ 1년 반 만에 영업실적 4280건… 고졸 영업 여왕들

대통령을 상대로 ‘용감한’ 질문도 주저하지 않았던 최 계장은 IBK기업은행에서도 소문난 영업 여왕이다. 그녀는 입사 한 달 뒤인 2011년 8월, 모교인 경일관광경영고를 찾았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상대로 이틀 만에 400개의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수시로 학교를 찾아갔다.

무턱대고 상품만 판 건 아니다. 후배들에게 은행 취업 준비 과정을 상세히 알려줬다. 친절한 상담과 함께 저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듬해 2월엔 신입생 500명이 졸업준비적금에 가입했다. 며칠 뒤 2, 3학년생 1000명도 적금 신청을 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졸업을 앞둔 3학년 학생 380명이 이 은행의 스마트폰 전용 상품인 ‘앱통장’과 스마트뱅킹을 신청했다. 올해도 벌써 입학 예정자 500명이 적금에 가입했고 그들을 포함해 1500명이 앱통장을 개설했다.

사회적 관심 속에 이뤄진 은행들의 고졸 채용. 사원들이 현장에 배치된 지 1년여가 지났다. 최 계장과 동갑내기 김유나 우리은행 계룡 지점 주임, 송안나 외환은행 미아동 지점 계장은 고졸 사원의 역량과 성과를 안팎에 보여준 주인공들이다.

김 주임은 모교를 오가며 체크카드, 주택청약통장 등을 150건 넘게 유치했다. 김 주임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이 상품은 필요한 거야’라고 말하면 많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 현장 동료들 “그녀를 본받자”

현장에서도 만족하는 분위기다. 최 계장과 함께 일하는 심재순 과장은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고객을 상대할 때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이제는 모두들 적극적인 최 계장을 본받자고 한다”고 말했다. 김석우 외환은행 인사부 채용담당 차장은 “처음에 고졸 사원을 배치할 때는 지점들이 웬만하면 받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은행은 올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줄일 계획이지만 고졸 사원 채용은 작년과 비슷하게 유지하거나 늘릴 예정이다.

○ 고객들 편견은 웃음으로 극복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아직도 편견을 가진 고객이 적지 않다. 고객들은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고졸 사원들에게 나이를 묻기 일쑤다. 고졸임을 알고는 창구를 옮기거나 다른 직원을 불러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김유나 주임은 “어떤 고객은 ‘자기 딸은 수천만 원씩 써 가며 대학교 나와도 취업 못하고 있는데 당신은 편해서 좋겠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런 시선들을 씩씩하게 받아 넘겼다. 송안나 계장은 고객들이 고졸임을 알고 ‘옆 분한테 할게요’라고 할 때마다 웃으면서 “저 한번 믿고 맡겨 보세요. 잘해 드릴게요”라고 말한다. 어느새 단골 고객이 생겼고 카드 유치 건수도 600건 이상을 기록했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커지자 이들의 꿈도 함께 커지고 있다. 김 주임의 목표는 ‘회사에서 핵심 인재’가 되는 것이다. 최 계장과 송 계장의 꿈은 좀 더 구체적이다. 최 계장은 ‘최연소 여성 지점장’, 송 계장은 ‘런던지점장’이 목표다.

웃는 얼굴과 밝은 목소리 그리고 집요한 자세로 꿈을 가꿔 가는 열혈 고졸 사원들. 인터뷰 말미에 송 계장이 기자에게 물었다.

“외환은행과 거래하세요? 일단 시간 날 때 저희 지점 오셔서 계좌부터 여세요. 그리고 좋은 상품이 많으니까….”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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