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주간
민주당이 5060 이상의 사람들이 이맛살을 찌푸리는 김어준 ‘총수’나 욕쟁이 김용민에게 집착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지난해 4·11총선에서 쓴맛을 봤으면서도 이번 대선에서 문 후보는 이들 나꼼수와 함께 길거리 유세를 벌였다. 이들과 함께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고 ‘국립호텔’에 다녀온 정봉주 전 의원도 “나꼼수는 이제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하지 않는가.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나꼼수나 원탁회의 때문이 아니라 선거 전략에서 ‘가운데 중(中)’자를 빠뜨렸기 때문이다. 조순형 전 의원은 7선 중 6선을 민주당 쪽에서 했다. 조 전 의원은 “민주당이 김대중(DJ) 전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중도였으나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지나치게 좌로 기울어졌다”고 비판했다. DJ가 당선된 1997년 대선 때만 해도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슬로건으로 썼는데 이번에는 ‘중산층 70% 복원’을 내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중산층을 내주었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당이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간 것을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보고, 당이 중도화, 더 나아가 합리적 보수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 있다”며 “그것은 원인 진단도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당의 정체성 노선을 오히려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4·11총선을 치르며 친노(친노무현)가 공천의 주도권을 행사해 좌편향이 더 짙어졌다. 대선 패배 이후 뒷전으로 물러서 있는 이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서는 당의 어떤 변화도 이루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모바일 투표의 덫에 걸려 있다. ‘진보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세력이 민주당의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모바일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 박상천 상임고문은 채널A 프로그램에 출연해 민주당이 개혁하려면 “당 대표를 선출하는 방법부터 먼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모바일 경선방식을 통해 이해찬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다. 이 대표가 선출된 때는 당심(黨心)에서는 김한길 의원이 앞섰는데도 모바일 투표에서 이 의원이 뒤집었다. 문 후보가 선출됐을 때도 당심에서는 손학규 후보가 앞섰다. 결국 모바일 투표는 모바일 조직 동원력이 있는 쪽이 이길 수밖에 없다. 인구 고령화로 5060 이상 유권자의 표심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모바일 투표는 노장층을 계속 소외시킬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 같은 진보적 가치를 파고들었다. 중산층과 서민은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중소기업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펼 것이라고 기대를 걸게 만들었다. 보수가 진보의 가치를 파고들어왔듯 민주당도 중도적 보수 쪽으로 외연(外延)을 확대했어야 하는데 거꾸로 낡은 이념에 집착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미국대사관에 몰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면 재협상 구호를 외치며 서한을 전달하고 제주 강정마을에 몰려가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지원했다. 중도와 중산층은 이런 민주당에 정권을 주기가 불안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과거에는 진보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개혁 변화 발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종북(從北)좌파 또는 수구적 진보가 연상된다고 하는 국민이 많아졌다. 모두 극단적인 좌파들의 행태에서 비롯된 국민 인식의 변화다.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 근본주의적 이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편견, 그리고 모바일 투표라는 민의 왜곡과 과감히 단절해야만 민주당에 희망이 있다.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얻은 1469만 표에 중도 중산층 실용으로 외연을 확대해 ‘+α’를 한다면 3년 후의 총선이나 2017년 대선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진보를 제대로 못해 총선과 대선에서 졌다는 근본주의적 해석론으로는 1469만 표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