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중도 끌어안고 종북과 확실히 선 그어야”
5선 의원을 지낸 정치원로에다 당 대표, 16·17대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민주당이 거듭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절름발이가 되어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민주당의 패인(敗因)은 무엇이었나.
“뭐니 뭐니 해도 ‘아름다운 단일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유권자 분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다. 젊은 사람들 투표율만 끌어올리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깨졌다. 앞으로 5060세대 유권자 비율은 45%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들을 향해 ‘꼰대’니 어쩌니 하는 사람이 나오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여당 지지는 아니라고 본다.
―후보 자체의 문제점은 없었나.
“대선 출마 전날까지 나는 이부영, 김덕룡 의원과 함께 문 후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국회의원직을 내놓으라’는 거였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 후보뿐 아니라 참여정부에 깊이 관여했던 고위관료들도 백의종군을 선언했어야 했다. ‘실패한 참여정부’를 떠올리게 하는 세력들을 앞에 내세웠다. 그분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국민들 눈에 ‘문 후보=참여정부’로 비쳤다. 당연한 것 아닌가. 오죽했으면 나조차도 문 후보 광화문 유세 때 참여정부 대표 인사들이 줄줄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선거는 틀렸다’ 생각했을까…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DJ) 같았으면 (이런 일은) 어림도 없다. DJ는 선거 때 ‘내 근처에 호남 인사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라, 경호원들이라도 시켜 물러나게 하라’고 했다.”
아직도 대선 패배의 상처가 깊은지 그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선대위 운영도 어수선했다. 뭘 조언해 주려 해도 누굴 붙잡고 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후보 스스로가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서 ‘된다’고만 하더라. 운동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이었다면 좋다. 하지만 (문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잖은가. 나중에 TV토론 영향으로 지지율이 약간 오른 정도였다. 우리 당 국회의원 12명이 자기 지역구에서 다 졌다. 8개월 전 총선 때는 이겼던 곳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이해찬 전 대표는 물론이고 문 후보 자신도 부산 사상구에서 졌다. 박기춘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은 서울 지역구 한 군데에서만 졌다. 선대위 리더십이 없었고, 협동도 없었다.”
“나중에 들은 거지만 안철수 후보가 마지막 타협안을 내놓았을 때, 문 후보는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더라. 그런데 이해찬 전 대표를 중심으로 몇몇이 (안 된다고) 펄펄 뛰어서 뒤집어엎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 바로 안 후보가 사퇴해 버렸다. 당시 당내에서는 안 후보의 타협안을 받아들여도 문 후보가 유리하다는 의견이 우세했었는데도 말이다.”
―안 후보 협상안을 거절한 측의 논리는 무엇이었다고 보나.
“제대로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단일화 경선에서) 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형세를 안일하게 보기도 했고. 안 후보가 금방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문 후보가 주변에 휘둘렸다고 보나.
―대선 1년여 전인 2011년 8월 변호사로 있던 문 후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본인은 권력의지가 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대선 출마에 대해) 마음을 정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급조된 지도자의 성격이 짙다. 안정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고.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박근혜 당선인이야말로 ‘준비된 지도자’였다. 10여 년간 정치무대에서 국민 마음에 각인됐잖은가. 하지만 문 후보는 갑자기 나타났다. 정치도 안 해봤고 선출직 국회의원도 안 해본 상황이었다. 국민들은 낯설었을 것이다. 어떻든 이번에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이 65∼80%였는데도 졌다.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의원이 출마했을 때 내가 선대위원장을 맡았었다. 지금에서야 이야기지만 그땐 ‘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졌다.”
―정치는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민주당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쇄신을 말하니 국민에게 감동이 없다.
“후보가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 DJ도 비슷한 상황에서 물러나 있다가 돌아오곤 하지 않았나. 비대위가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패인을 분석하고 ‘왜 졌는지’ 뼈저리게 반성하고 분석해야 한다. (민주당은) 대선 두 번 지고, 총선 두 번 졌다. 우리 당 국회의원 127명 중 100명이 친노 혹은 친노에 가까운 사람이다. 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앉아 있으니 제대로 된 반성이 안 된다.”
―원탁회의(백낙청 서울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야권의 원로모임. 4·11총선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중재했으며 이번 대선에서도 문·안 단일화를 촉구했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게 과연 시민의 대표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자기들끼리 만들어서 한 것 아닌가.”
―정 고문은 이번 선거 때 어떤 역할을 했나.
“이부영, 김덕룡 전 의원과 셋이서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는 내용의 개헌을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17일에는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등 대표 17명이 성명을 내기도 했다. 대선후보들과의 만남도 추진했는데 박근혜 당선인 쪽은 거부했고, 문 후보는 100% 찬성 의사를 밝혀 굳이 만날 필요가 없었다. 안 전 후보도 만났었다.”
정 고문은 당시 “안 후보를 처음 봤다”고 했다.
“그 전에는 (그를) 잘 몰랐다. 그래서 만남을 앞두고 그의 책 세 권을 찾아 읽어봤다. 책을 읽어보고 그에 대한 오해가 많이 풀렸다. 탄탄대로 인생인 줄 알았는데 실패도 많았더라. 컴퓨터공학자가 정치를 알까 했는데 시대적인 이슈를 제대로 잡았더라. 하지만 ‘정치개혁’ 부분에서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당을 폐쇄해야 한다는 부분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났을 때 (국민) 속 시원하게 내던지는 것은 좋지만 깊은 안목으로는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해 줬다. 얼굴이 벌게지더라.”
―단일화 문제는 어떻게 봤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선을 했다면 안 후보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렇게 되었다면 박 당선인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안 후보가 사퇴를 하자마자 내가 바로 전화를 해서 ‘무조건 문 후보를 찾아가 유세를 도와주라, 그래야 멋쟁이가 된다’고 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더라. (그는) 항상 누가 무엇을 말하면 고민하고 연구해서 대답하는 사람이다. 이런 점이 기존 정치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튼 그 뒤 세 번 정도 전화를 했을 때 모두 현장에 가 있더라. 스스로 잘 판단했다고 생각했다.”
―민주당의 앞날이 잘 안 보인다.
“위기가 기회이다. 40대, 50대를 열심히 공략하고 중도나 중도우파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종북 좌파와는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의자에 앉아서 2030에 연연하는 것은 일부러 지려고 작정한 집단이 되는 길이다. 홍보 전략도 문제였다. 특히 이번에 종합편성채널 출연 거부는 큰 실수였다.”
―이른바 ‘친노 그룹’의 움직임은 어떤가.
“말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이번에 실패한 이유를 알고 있을 테니 함께 고쳐가야 한다.”
―민주당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가장 두려운 것은 반성 없이 이대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희망이 없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비해 차기 인재 풀이 넓다. 키워야 하고, 준비시켜야 한다. (후보자를) 빌려온다면 정당의 막을 내려야 한다. 인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번 인수위 박 당선인의 인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윤창중 수석대변인,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그는 인터뷰를 위해 10장 이상의 자필 자료를 준비해 왔다. 두 번이나 대선 선대위 위원장을 맡은 사람답게 ‘큰 판’을 보는 시야가 느껴졌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그의 어깨엔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민주당은 ‘국민들이 민주당에 갖고 있는 애정의 깊이를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고 강력한 야당이 없는 여당 독주의 국정 운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들이 보내는 걱정이 진심 어린 애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루빨리 길을 찾아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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