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생산인구 감소… 이대로 가면 ‘올드 일본’ 판박이
전체 인구 20% 이상이 노인… 초고령사회 일본 일본 효고 현 스모토 시의 체육관에서 일본 노인들이 ‘그라운드 골프’ 경기를 하고 있다. 골프공보다 약간 큰 공을 굴리며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다. 일본 노인들은 체육관이나 도서관 등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아사히신문 제공
도서관에 머물면 돈 쓸 일이 많지 않아 생활에 부담이 줄어든다. 그는 “친구들도 ‘100세까지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돈을 함부로 못 쓴다”며 “저성장에 따른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고령층에게는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 젊은 인구로 성장의 질 높여야
일본은 최단 기간에 경제강국으로 도약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도약하는 데 걸린 기간은 8년(1987∼1995년)으로 미국, 독일(이상 16년)보다 훨씬 짧았다.
하지만 성장의 질(質)을 따지면 명예로운 기록이 아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연평균 성장률이 1%를 밑도는 등 경제가 활력을 잃어 장기 불황에 빠져 있다”며 “저출산 고령화가 저(低)성장의 주범”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경제활동의 주축인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199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감소했다. 연금 등으로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사람은 늘고 세금을 낼 사람은 줄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넘는다.
통일 등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의 40-80클럽 진입 자체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인구 8000만 명을 달성해도 일본처럼 적정 소비수준을 갖춘 젊은 인구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면 ‘소비 감소→내수시장 위축→설비 투자 감소→고용 감소→성장률 둔화’라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한국의 인구 구조는 일본보다도 악화될 개연성이 크다. 한국은 4년 뒤인 2017년 고령사회(노인 인구 비중 14% 이상)에,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고령화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다. 또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아이 수를 가리키는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일본(1.42명)보다 낮다. 최근에는 북한 사회마저 고령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의 8%로 이미 고령화사회(노인 인구 비중 7% 이상)에 진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경상학부)는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가다가는 저성장의 덫에 빠질 것”이라며 “40-80클럽에 진입할 수 있는지가 생산성이 높은 인구를 얼마나 확보하는가에 달린 만큼 총체적인 인구 전략부터 시급하게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여성 외국인 노인을 일터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글로벌 화학회사인 아크조노벌. 사무실에 군데군데 비어 있는 자리가 눈에 띄었다. 주 3일, 주 4일 근무 등을 택한 ‘시간제 근로자’들의 자리다. 이들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과 비슷하다. 이 회사 전체 직원의 16%인 830여 명이 시간제 근로자로 대부분 여성이다. 직원들은 시간제 근로를 활용해 자녀를 양육할 시간을 벌었다. 이 회사 인사담당 마르한 우데만 이사는 “시간제 근로가 확산돼 고학력 여성들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이처럼 시간제 근로를 적극 활용해 1990년 유럽에서 꼴찌에 가까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53%에서 73%로 끌어올렸다. 이 기간 네덜란드는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1991년)를 돌파한 뒤 2003년과 2006년 잇달아 3만 달러, 4만 달러를 달성했다.
한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들의 평균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60%대, 4만 달러 이상은 70%대이다. 한국은 최근 20년간 50% 안팎을 맴돌고 있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한국이 40-80클럽에 진입하려면 자녀 양육 등으로 회사를 관두는 여성들을 경제 현장으로 이끌어내 이들의 잠재력을 활용해야 한다”며 “정부의 제도뿐 아니라 직장문화도 함께 개선해서 출산 및 양육 인프라를 탄탄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활용은 인구 구조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방법이다. 캐나다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홍콩 거주민들의 캐나다 이민을 폭넓게 받아들였다. 캐나다는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까지 15년(1989∼2004년) 걸렸지만,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까지는 3년(2004∼2007년) 걸렸다.
한국 역시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외국의 고급인력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여 인구 구조를 개선해야만 40-80클럽 진입을 앞당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외국인 정책(법무부), 해외인력 정책(고용노동부), 다문화 정책(여성가족부) 등 각기 흩어진 이민정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성에 차질이 없는 60대 중반의 ‘젊은 노인’들도 경제활동인구로 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는 “한국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고령 인구를 활용하지 않으면 40-80클럽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386세대(지금의 486·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가 은퇴해도 계속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저성장에 짓눌린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한국, 여성-외국인 인력 활용 낙제점 ▼
대졸여성 63%만 경제활동… OECD 평균에 크게 미달
이민자 300만명 필요한데 아직은 절반에도 못 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15∼6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2011년 기준)은 53.1%로 OECD 회원국 34개국 중 25위에 머물렀다. 특히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3.3%로 OECD 평균(82.4%)에 훨씬 못 미쳤다. 이는 능력 있는 ‘알파 걸’들이 출산과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퇴직한 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한국이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OECD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양성평등 보고서’를 통해 “한국 여성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역량이 뛰어난 데에 비해 고용이 저조하다”며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려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확대나 보육제도 개선은 물론이고 장시간 근로 축소와 남성의 가사 참여율 확대 등 사회·문화 인프라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외국인 포용정책 면에서도 여전히 소극적이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노동력 부족과 인구 감소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40-80클럽 국가들과 대조적이다.
이민정책연구원 정기선 박사팀이 2011년 법무부에 제출한 ‘이민 및 사회통합 정책 방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2030년에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부족 현상을 해결하려면 약 300만 명의 이민자가 필요하다. 지난해 6월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15세 이상 외국인(111만4000명)의 3배 수준이다. 2030년 전체 인구(5216만 명)의 약 6%를 외국인이 메워야 노동력 부족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무작정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보다 미국처럼 ‘선별적 이민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인구학회장인 이승욱 서울대 교수(보건학)는 “한국은 다문화주의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인구밀도까지 높아서 단기간에 이민자가 급증하면 사회갈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며 “당분간은 교육수준과 생산성이 높은 외국인 위주로 이민정책을 펼쳐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박중현 경제부 차장
▽팀원=김유영 이상훈 문병기
황형준 유성열 경제부 기자
박형준 도쿄 특파원
현대경제연구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