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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로저 코언]영국에 국민투표를 허(許)하라

입력 | 2013-01-18 03:00:00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렉시트(Brexit·Britain+exit)’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먹는 시리얼의 새 상표가 아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이 신조어가 빠른 속도로 유행하고 있다.

영국 의회는 1975년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뒤에도 종종 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로 정하자는 제안을 표결에 부쳐왔다. 지난해 10월에만도 하원에서 국민투표안이 부결됐으나 최근에는 찬성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연립정부는 EU 탈퇴론이 높아지자 국민투표로 EU 탈퇴 여부를 결정하자는 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면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뜻을 드러냈지만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다.

국민들의 EU 탈퇴 여론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가디언과 여론조사업체 ICM 폴이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51%의 응답자가 EU 탈퇴에 찬성했다. 반대 응답자 40%보다 훨씬 높다.

영국은 왜 EU 탈퇴를 원할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최근 유럽 재정위기는 유로화가 아니라 영국 파운드화를 쓰는 게 낫다는 인식을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EU 가입이 장기적으로 회원국 간 정치적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해 준다는 믿음도 희박해지고 있다.

독일과 그리스처럼 경제 규모나 정부 재정의 건전성이 판이하게 다른 나라가 같은 통화인 유로를 쓰면서 갖가지 문제들인 ‘유로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영국은 이런 유로 딜레마를 겪지 않아도 되는 점에 안도하고 있다.

국내 상황도 캐머런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나이절 패라지 독립당 당수는 EU 잔류를 강하게 반대하며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국민의 인종적 종교적 다양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점도 민의를 한곳으로 모으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영국에는 약 750만 명의 외국 출생 영국인이 있다. 이는 2001년 260만 명보다 3배 가까이로 늘어난 수치다.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영국인을 단순히 ‘기독교를 믿는 백인’으로 보기 어려우며 국민들의 이해관계도 제각각이다.

특히 제시카 에니스(런던 올림픽 육상 여자 7종 경기 금메달리스트로 영국인과 자메이카 출신 흑인의 혼혈)처럼 인종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젊은 세대는 EU에 관심도 없고 존경심은커녕 체제 유지 필요성도 못 느낀다. 바로 이런 점이 과거와 달리 영국의 EU 잔류를 확신할 수 없게 한다.

물론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현재 영국산 자동차의 80%가 해외에서 팔린다. 이 중 절반 이상은 EU 국가에서 판매된다. 지난 2년간 영국 자동차산업에 투자한 해외 자본은 100억 달러에 달한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해외 투자자도 떠날 것이고 관세는 치솟을 게 뻔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영국의 EU 탈퇴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영국 우선주의’가 급속한 세계화가 이뤄지는 21세기 시대 조류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이는 유럽 재정위기가 영국을 국민투표로 몰아가고 있다. 국민투표를 실시할 이유가 그만큼 중대하고 심각하다는 의미다. 국민투표는 반드시 필요하다. 1975년에는 탈퇴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영국이 1975년과 달리 좋은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