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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케이팝 조립 중] 베이징무도학원 케이팝 꿈나무들

입력 | 2013-01-18 03:00:00

“나도 빅토리아 선배처럼 되고싶어요” 롱다리 학생들 구슬땀




베이징무도학원 민족무용학과 학생들은 한국무용, 즉흥무용 수업을 비롯해 다양한 수업을 필수로 수강한다. 베이징무도학원 한셴제 교수 제공

키 크고 늘씬한 중국 미남 미녀들만 다닌다는 베이징무도학원(北京舞蹈學院). 중국 베이징 하이뎬(海澱) 지역에 위치한 이 학원은 배우 장쯔이뿐만 아니라 걸그룹 f(x)의 빅토리아와 미쓰에이의 지아가 다녔던 중국의 유명 무용학교다.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아이돌 그룹 멤버를 배출하는 고급 인력 기지이기도 하다. 걸출한 춤 실력과 빼어난 외모를 겸비한 이 학교의 많은 학생은 한국에서 성공한 선배들처럼 케이팝 가수가 되길 꿈꾼다.

베이징무도학원 민족무용학과 한셴제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와 한핑 주임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중국 전역에서 재능 있는 학생들이 모인 우리 학교는 케이팝 시장의 거대 인력 기지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국 유명 기획사의 캐스팅 담당자들도 이 학교의 끼 있는 학생을 발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베이징=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스타를 꿈꾸는 ‘롱다리’ 학생들

무용 엘리트 학교인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선 엄격한 신체비율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3번 척추부터 엉덩이까지의 길이보다 엉덩이 아래쪽부터 발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0cm 더 길어야 입학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 학교 교정에선 요즘 두꺼운 패딩점퍼 아래 비정상적으로 길고 가는 다리를 뽐내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학생 인원도 1200명 정도다. 부속 중고등학교 인원까지 합치면 총 2000여 명이 이곳에서 무용을 배우고 있다.

중국 각 지역에서 상경해 어렵게 이곳에 입학한 학생들이 왜 케이팝 가수를 꿈꾸는 것일까. 9일 오후 교정에서 민족무용학과 한핑(韓萍) 주임교수와 한셴제(韓賢杰) 교수, 학생들을 만났다. 손목엔 화려한 팔찌들, 손톱엔 반짝이는 큐빅을 붙여 한껏 멋을 낸 여학생들과 비비크림으로 피부 표현에 신경 쓴 남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케이팝 가수가 되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죠. 송첸(宋천·f(x) 빅토리아의 본명) 선배를 보고 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학생 왕하이메이·王海媚·21·여)

“예전엔 한국 가수들을 보며 막연히 동경했지만 이제는 제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중국인 멤버가 있어 중국인에게도 어필하는 아이돌 그룹은 더 관심 있게 보죠.”(류즈창·劉志强·23)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 중국인 멤버가 늘어난 것은 이들에게 큰 희망이다. 한국 기획사에서 훈련을 받은 뒤 중국에서 활동하는 슈퍼주니어-M, EXO-M에도 중국인 멤버가 있다. 한국 멤버로만 구성된 소녀시대, 빅뱅 등 기존 한류를 이끌던 아이돌 가수와는 다르다.

○ 한국무용과 한국어 공부는 필수

중국 대도시에서 열리는 한국 기획사 오디션은 이들에겐 중요한 기회다.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지난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2월과 8월 모두 4번의 오디션을 열었다. 한국 유명 기획사들은 캐스팅 관계자를 중국 곳곳에 파견해 인재 발굴에 나서고 있다.

“학과 친구 중에 SM 연습생이 있어요. 저도 연습생으로 들어가기 위해 친구들과 학교 연습실에서 빅뱅, 슈퍼주니어 춤을 연습하죠. 힘들 땐 싸이의 말춤을 추기도 해요. 하하.”(장원한·張文涵·21)

“전공을 살려서 무용대회에 입상해 캐스팅 관계자의 눈에 띄는 것도 한 방법이죠.”(뤼잉자·呂英嘉·18·여)

케이팝 가수가 되기 위해선 한국 전통무용과 한국어 공부도 필수다. 한국 전통무용은 오디션 때 심사위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다. 한국어는 한국 기획사들이 자사 연습생에게 한국어를 필수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미리 배워둔다.

“민족무용학과는 소수민족의 무용 수업이 교과과정에 포함돼 있어서 한국 전통무용도 배웁니다. 한복을 입고 칼춤, 살풀이춤을 추는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어요.”(리진링·李金玲·21·여)

이들에게 중국이 아닌 한국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니 학생들은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교수의 눈빛을 확인했다. 학생들의 시선을 의식한 교수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자기 발전을 위해서라면 한국에서 활동해도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좋은 무용가는 음악에 소질이 있는 법이죠.”(한핑 주임교수)

“이 시대는 예전이랑 달라요. 예전엔 전통적인 무용을 했지만 이젠 더 종합적인 인재가 필요해요. 제 제자였던 송첸처럼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해야죠.”(한셴제 교수)

그제야 학생들도 입을 열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한국 대중음악의 위력을 또 한번 느꼈어요. 중국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게 더 멋져요.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 제 꿈을 키워보고 싶습니다.”

베이징=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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