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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新人작가의 꿈 아쿠타가와賞

입력 | 2013-01-18 03:00:00


영화의 배경은 전국시대의 일본. 한 사무라이가 단도에 찔려 숨지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수사에 나선 관청은 피살자의 아내와 그녀를 겁탈한 산적, 현장을 목격한 나무꾼을 불러다 조사하지만 진술이 서로 엇갈린다. 정당한 결투 끝에 사무라이가 죽은 것이라는 산적, 순결을 잃은 자신을 멸시하는 남편의 눈빛에 실신했다가 깨어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는 아내, 실수로 사무라이가 자신의 칼에 찔렸다고 증언하는 나무꾼. 여기에 아내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자결했다는 사무라이의 원혼을 대변하는 인물까지 등장하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등장인물들은 진실이란 말하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1910∼1998)의 영화 ‘라쇼몽’의 줄거리다.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 작품을 통해 일본 영화의 존재는 서구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라쇼몽’의 원작을 쓴 사람은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고 도쿄대 재학 시절에 첫 소설을 발표했다.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자살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150편의 작품을 남겼다. 전설과 중세의 이야기를 세련된 심리 드라마로 풀어낸 그의 소설은 일본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를 기리기 위해 1935년 아쿠타가와상이 제정됐다.

▷이 상은 기성작가에게 주는 나오키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인(新人)문학상이다. 해마다 1월과 7월 두 번에 걸쳐 수상자를 발표한다. 수상자 중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와 국내에도 잘 알려진 무라카미 류 등 일본 문학을 빛낸 작가가 수두룩하다. 재일동포로는 이회성(1972년), 고 이양지(1989년), 유미리(1997년)에 이어 2000년 현월 씨가 이 상을 받았다. 수상자 명단을 보면 이시하라 신타로의 이름도 들어 있다. 일본 단체에서 정치인의 우익적 성격을 평가한 결과에서 1위를 차지한 그는 ‘태양의 계절’이란 소설로 1956년 이 상을 받았다.

▷그제 148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75세의 구로다 나쓰코 씨가 선정됐다. 역대 최고령 수상자란 점에서 화제다. 수상작 ‘ab 산고’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은 “작가의 나이와 상관없이 매우 신선하고 훌륭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국어교사와 사무원 등을 하면서 글쓰기를 했으나 본격적으로 소설에 도전한 것은 은퇴 이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생 2막’에 새롭게 도전한 구로다 씨 같은 노년의 신예 작가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