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훈(1955∼)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뜨겁게 달굽니다
새끼를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에 왔습니다
어린 새끼 산딸기를 따먹느라 어미를 잊었습니다
그 틈을 타 어미 곰
몰래 새끼 곁을 떠납니다
새끼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놓였습니다
버려야 할 때 버리는 것이
안아야 할 때 안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는 그 길이
탯줄을 끊어 자궁 밖 세상으로 내놓던
걸음마를 배울 때 잡은 손을 놓아주던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울창하게 만듭니다
‘행복한 길고양이’라는 책에서 본 사진 한 장이 생각난다. 제목이 ‘어떤 이별’이었던가. 안 떨어지겠다고 길바닥에서 뒹굴며 칭얼거리는 새끼 고양이를 어미 고양이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장면이었다. 길고양이는 새끼가 젖을 떼면 멀리 데려다 놓고 저만 돌아오거나 구역을 물려주고 자기가 떠난다. 그렇게, 동물의 새끼는 어미로부터 떨어져 제 힘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차가운 사랑’은 이런 자연의 섭리를 빌려, 모짊의 형태로 드러나는 부모의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버려야 할 때 버리는 것이/ 안아야 할 때 안는 것보다’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그 차가운 사랑이 진짜 뜨거운 사랑이다.
이 시가 실린 시집 ‘부평 4공단 여공’은 한국의 노동자, 그것도 영세공장 노동자의 삶을 곡진하게 그렸다. 시인 정세훈은 1972년, 열일곱 살에 공장노동자가 됐다. 열일곱! 기타를 쥐어야 할 나이. 어떤 소년은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대들고, 어떤 소년은 처음으로 시를 쓰고, 어떤 소년은 첫사랑을 만났을 것이다. 시인은 그 나이에 원치 않게 발 들인 공장생활에서 진폐증에 걸렸고, 20년 뒤 원치 않게 공장 일을 잃었다.
‘차가운 사랑’에서 나는, 그 힘겨운 삶은 혹시 신의 차가운 사랑이 아니었을까,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