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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군산 ‘사가와 가옥’

입력 | 2013-01-19 03:00:00

긴 복도… 어두운 실내… 축소지향 일본인 특성 잘 담겨




전라북도 서반부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호남평야는 일찍부터 한반도의 중요한 곡창지대였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은 구한말 이후 수탈의 역사를 불러왔다. 강화도조약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강제 개항된 군산항은 쌀 수탈의 거점이었다.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실려간 물자 가운데 95%가 쌀이라고 할 정도였다. 1908년 당시 군산에는 200여 곳의 일본인 농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은 도시에 살면서 힘없는 조선 농민들을 소작인으로 부렸다.

오늘날 군산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敵産家屋·광복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건물)에는 그 아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집의 형태는 근대 서양 건축 양식부터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까지 다양하다. 광복 후에는 미움의 대상이 돼 많은 집이 철거됐다. 6·25전쟁 중에 파괴된 것도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근대 건축물들은 이제 문화재가 돼버렸다. 증오의 대상이었던 건물이 관광자원이 되는 모습을 보며, 시대는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번 스케치여행에는 그런 시간들을 힘겹게 버텨온 어느 낡은 일본식 가옥을 담았다. 전북 군산시 영화동에 있는 이 집은 일명 ‘사가와(さがわ) 가옥’으로 불린다. ‘사가와’라는 이름은 집 안에 있는 철제금고의 상표명 ‘SAGAWA’에서 따왔다. 일제강점기에 이 집은 전당포로 운영됐다고 한다. 당시 담보로 맡겨진 물건을 보관했던 창고의 두꺼운 철판은 그대로 남아 방문이 됐다. 창문에 붙어 있던 두꺼운 덧문은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유희주 씨(58·여)는 45년 전, 그가 열세 살 때 이사를 왔다고 했다. 당시 면장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이 집이 일본인이 운영하는 전당포였다는 사실을 알고 큰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집을 구입했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집과의 첫 만남은 한마디로 “낯선 두려움”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정원을 둘러 난 긴 복도와 넓고 어두운 실내가 가져다준 이국적인 분위기는 어린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뒤로 집은 다양한 세월의 풍파를 겪었다. 음식점이 된 적도 있었고, 일부가 헐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기본적인 틀은 변치 않고 남았다. 쓰라린 군산의 역사도, 이제 할머니가 된 한 사람의 추억도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접객실을 둘러싸고 이어진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건물들 사이에는 축소지향적인 일본인의 특성이 잘 담겨진 중정(中庭)의 아늑함이 소담스러운 풍경화처럼 내걸려 있었다. 나는 접객실에 앉아 주인이 건네는 차를 마시며 옛 이야기들에 푹 빠져들었다. 일본식 만살창(창살이 가로세로로 촘촘한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싸늘한 겨울의 한기 덕에 푸른빛을 띠는 듯했다. 문득 영국 시인 골드스미스가 말한 ‘오래된 것’에 대한 예찬이 떠올랐다.

<<나는 오래된 것은 모두 좋다. 오래된 친구/오랜 세월/오래된 관습/오래된 책/오래된 와인>>

아무래도 그의 예찬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어졌다. 오래된 집!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