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논설위원
‘더불어 사는 삶’ 추구
미국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되는 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최근 토마시 코즈워프스키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며 제러미 리프킨이 쓴 ‘유러피언 드림’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EU는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를 앞세우며 무한 성장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 때문에 앞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세계 역사를 선도해 갈 것이다.’ 이 문구를 인용한 박 당선인은 “한국이 앞으로 지향하는 방향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으니 유럽적 가치관에 익숙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유러피언 드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인용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권했던 책이다.
언어가 서로 다른 데다 수천 년간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 유럽이 단일 정부, 단일 의회,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공동체를 이룬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말과 혈통이 같은 북한과 아직도 원수로 지내는 한국으로선 ‘더불어 사는 방법’에 관한 한 유럽 사람들에게 한 수 꿀릴 수밖에 없다. 정신병자 한 명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수십 명씩 죽는 사건이 잇달아도 ‘총기를 소유할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미국적 가치관은 공동체를 중시하는 한국적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미국의 나쁜 면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한국은 소득 상위 1%가 부(富)의 16.6%를 보유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23%) 다음으로 양극화가 심하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해치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연일 나온다. 가정과 학교에서 버려진 청소년들이 거리를 헤매며 혼자 남은 노인들은 외롭게 죽어간다. 한국인의 45%가 ‘나는 하층민’이라 생각하고 58%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에 젖어 있다.
박 당선인이 지난해 새누리당의 정강 정책을 바꿔 복지, 일자리,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것은 ‘우리 사회가 더이상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국민 정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로서 민심에 예리한 촉각을 지닌 그는 야당보다 강하게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으며 ‘할 일은 하는 정부’를 약속했다.
설득과 조정 통해 공약 실천을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