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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이 남자가 내 남편이다”

입력 | 2013-01-19 03:00:00


친구들은 남자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깔린 아내 사진을 발견하고는 “집에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왔다. 거래처 사람들은 “애처가인가 보다”며 신기해했다.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사실, 남자는 휴대전화에서 아내 사진을 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사진 덕분에 건망증이 많이 개선됐다. 혹시 빠뜨린 게 있는지 챙기게 되었다. 아내가 전부 보고 있는 것 같아서.

휴대전화의 아내 사진은 인터넷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였다. 이런 내용이었다.

‘저는 늘 지갑에 마누라 사진을 넣고 다닙니다. 심각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사진을 봅니다. 그러면 모두 괜찮아집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요? 간단합니다. 이 여자가 내 마누라다. 이보다 심각한 일이 또 있을까.’

아내 사진의 효과는 상당했다. 상사에게 호된 질책을 당해도 돌아서서 휴대전화 화면을 보면 즉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팀장이 아무리 화를 낸들, 꼬투리만 잡으면 하루 종일 다그치며 ‘잘못의 진바닥’을 깨닫게 해주는 아내에게 비할 수 있을까.

사진에서 용기를 얻기도 했다.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를 단칼에 잘라내는 배짱을 부려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설혹 그 거래를 놓친다 해도 아내와 살아가는 것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에게 휴대전화 정기검열을 받을 때에는 속마음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 아내가 별다른 반응 없이 돌려주는 휴대전화를 받으면서 몰래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알 수 없었다. 아내가 세월만큼 사나워진 게 먼저인지, 아니면 돌도 씹어 먹을 것 같던 패기를 잃은 채 점점 위축되는 자신의 무기력이 먼저인지.

반가운 일이 생겼다. 며칠 전부터 TV 위에 남자의 사진이 놓인 것이었다. 아내의 지갑에서도 그의 작은 사진을 얼핏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어쩐 일일까 궁금해하다가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자들은 작은 일로 감동을 받는다던데, 혹시 내가 휴대전화에 사진을 깔아놓았던 것에 대한 답례가 아닐까.’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뿌듯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니까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조금 전, 인터넷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발견했다.

‘저는 남편 사진과 늘 함께합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남편 사진을 봅니다.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집니다. TV의 홈쇼핑 채널을 볼 때도 그렇고, 백화점에서 친구가 비싼 아이템을 구입할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쳐 오르다가도 남편 사진을 보면 곧바로 잠잠해집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요? 간단해요. 이 남자가 내 남편이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한상복 작가